2021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2021.08.0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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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든 본당 신부들의 주보이신 성 요한 마리아 비엔나 사제 기념일 미사의 말씀은 믿음 이야기입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 15,24)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서 마귀 들린 딸을 구원해 달라고 외칩니다. 대답조차 않으시는 예수님의 뒤를 쫓아가는 어머니의 애타고 절박한 심경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당신은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해 파견된 것이라고 하시니, 이방 여인의 마음이 적잖이 위축되었을 것 같지요.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지향을 시험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모욕적으로 들렸을 법도 한데, 딸을 위해서라면 어떤 취급을 당하더라도 물러설 마음이 없습니다.
제1독서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마련하신 가나안 땅 때문에 생긴 일화입니다.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민수 13,31)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민수 13,33)
가나안 땅은 이미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각 지파의 수장들을 모아 그 땅을 미리 정탐하게 하신 건, 점령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해 보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비옥하고 풍요로운 가나안 땅을 확인하고 주님의 권능과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 백성이 가나안 땅을 보고 기쁨과 감사로 의기충전해서 행복할 거라 여기신 주님의 기대가 과했던 걸까요?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나머지 열 명의 수장은 가나안의 풍요와 주민들 풍체에 진즉에 기가 죽어 부정적이고 불길한 소문을 퍼뜨립니다.
스스로를 "메뚜기" 같다고 한 처참한 자기 비하는 아직 그들 안에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이 형성되지 못했음을 드러냅니다.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에게서 거대강국 이집트의 노예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아직 하느님께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선물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지요.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민수 14,28)
아직 주님께 대한 믿음이 영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우성치고 통곡하며 불평하자 주님께서 무척 언짢아 하십니다. 주님도 단단히 상처받으셨습니다. 당신 백성이 좋아하리라 믿고 기껏 펼쳐 보여주신 선물이건만, 열등 의식에 싸인 백성이 너무 부정적이고 배은망덕하게 반응했으니 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 일의 정탐 기간을 사십 년의 광야살이로 되돌려 받습니다.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을 거라 여겨 주님의 약속을 무시했던 언사 그대로, 그들은 결국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지요.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과 구원의지를 불신하고 무시한 자기들의 말대로 된 것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복음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탄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매달린 여인이 예수님의 경탄과 칭찬을 듣습니다. 그 옛날, 당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당신 백성으로 인해 상처 받으신 하느님께서, 지금 굳은 믿음을 고백한 이방 여인으로 인해 치유를 받으신 흡족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여인의 딸은 바로 그 시간에 마귀에게서 해방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는 바가 실체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자신을 메뚜기 같다고 여기는 이가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믿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반면 이 가나안 여인은 강아지 소리를 듣고도 견고했지요. 그래서 믿음은 참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 모상이라는 건강한 자기 인식 안에서 주님께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이미 구원을 약속받은 하느님의 자녀들이지요. 성령 안에서 우리가 믿는 바를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지금 여기서 선취하여 누리게 만드는 신비랍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저희 본당 신부님과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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