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3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2021.08.0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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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겸손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제자들이 호수 위에서 파도에 시달리고 있을 때, 뭍에서 군중을 돌려보내시고 홀로 남아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 배를 향해 걸어오십니다.
중력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없지요. 이를 모르지 않는 제자들이 혼비백산해서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르자, 이에 예수님께서 당신이라고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익히 아는 목소리로 그들에게서 두려움을 걷어내 주십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그 와중에 베드로가 용기있게 청합니다. 주님께서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주시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아직 믿음까지는 아닌 듯 보입니다. 우리가 아는 베드로 사도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다분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흥분에서 나온 외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마태 14,30)
진짜로 '오너라' 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힘 입어 용기를 내 배 바깥으로 발을 내디딘 베드로는 실제로 물 위를 몇 걸음을 걷습니다. 그가 자신을 잊고 오로지 예수님만 주목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실체를 인식한 순간 그만 두려움에 압도되고 말지요.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걸 뱃사람인 그가 체험과 논리로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는 광야에서 일어난 모세의 형제자매 안에 일어난 갈등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민수 12,2)
아론과 미르얌이 모세를 비난합니다. 사실 사건의 발단은 모세가 동족이 아닌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 일 때문인데, 비난의 쟁점이 빗겨났지요. 이민족과의 혼인을 나무랐다면 나름 정당성을 지녔을 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너만 못한 게 무엇이냐'고 따지는 건 기회를 잡아 질투와 시기심을 드러낸 것밖에 안 됩니다. 이는 모세를 그 자리에 세우신 주님께도 불평이 됩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 12,3)
성경 저자는 모세가 이토록 주님께 특별한 존재로 여겨질 수 있는 이유를 그의 "겸손"에서 찾습니다. 최상급의 "겸손"으로 표현하였지요. 사실 온갖 위험과 불확실성이 점철된 광야에서 백성을 이끌 수장의 자질은 인간적 능력이나 물리적 힘, 말주변이 아니라 겸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주님은 때마다 상황에 맞는 지도자를 백성에게 보내 주셨지요. 정복과 통일을 위해서는 다윗의 용맹과 순종을, 번영을 위해서는 솔로몬의 지혜를 쓰셨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어린애와 노인에 짐승까지 딸린 거대한 무리가 자기들 힘만으로는 생명을 부지하기조차 어려운 황무지를 통과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가는 과정을 감수하려면, 자기기 누구인지 알고 주님이 누구신지 아는 겸손이 가장 중요한 덕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입과 입을 마주하여 그와 말하고, 환시나 수수께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민수 12,7-8)
주님께서 모세의 변호인이 되어 주십니다. 이민족 손에 길러지고 살인까지 저질렀던 모세를 이스라엘의 민족 정서로만 보자면 부족함과 결격 사유가 다분하지만, 그런 모세이기에 오롯이 주님께만 집중하고 그분 뜻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자신을 부르신 주님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 주님과 함께면 아무것도 아닌 자기가 무엇이 됨을 아는 이는 주님을 뺀 자신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투신하고 의탁합니다. 겸손은 거기서 나옵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마태 14,30)
물에 빠진 베드로가 외칩니다. 그는 자기가 잠시 물 위를 걸은 것이 오로지 예수님 덕분이었음을 즉시 깨닫고 도움을 청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베드로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지만, 예수님 없는 베드로는 아무리 뱃사람이어도 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맹목적 의존이나 도피가 아닙니다. 겸손은 자신을 주님과 연결지어 믿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자신이 주님과 함께 누구인지, 주님 없는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를 아는 이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책감이나 죄의식에서가 아닌 통찰과 자존감에서 우러나는 겸손은 비굴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믿음과 겸손으로 주님과 함께 새 역사를 써나가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기적은 믿음으로 가능해지고, 겸손으로 효력을 이어간답니다. 허락하신 삶의 모든 순간이 구비구비 기적이고 은총임을 경탄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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