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8주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8월 1일 연중 제18주일

 

2021.08.01.mp3

2.54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새로운 양식과 새로운 생명 이야기입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보고 군중이 예수님을 쫓아옵니다. 식민지 상황에서 식량과 재산을 수탈당하는 이들에게 빵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생명과 직결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육신의 빵 때문에 당신을 따라온 이들의 시선을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돌리고자 하십니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요한 6,31)
군중은 예수님의 빵 이야기에 당장 만나를 떠올립니다. 조상들이 40년 동안 굶어 죽지 않고 황량한 광야를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만나 덕분이었음을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지요. 그들에게 만나는 주님의 보호와 돌봄의 표징입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내리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탈출 16,15)
파스카와 같은 삶의 커다란 변화를 체험하고 나서 또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사람들은 곧잘 변화 이전의 과거를 미화하고 이상화하기 일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시절을 노예살이과 영아 살해 등의 기막힌 고통으로써 보다 고기 냄비와 배불리 먹던 빵의 추억으로 소환하였지요.


구해준 입장에서 들으면 분통이 터지는 일일 터인데도, 주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그리도 결국 당신께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다른 구원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먹을 양식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신 것이지요.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탈출 16,4)
그런데 분명 만나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음식 맞지만, 이 만나조차도 또한 "썩어 없어질 양식"이었음을 성경이 전합니다. 그날 먹을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좀 더 챙겨서 다음날까지 비축해 둔 사람의 만나는 썩어서 "구더기가 꾀고 고약한 냄새가 났"지요.(탈출 16,20) 인간적 탐욕과 불신으로 주님 말씀에 온전히 의탁하기를 주저하며 뒷주머니를 차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만나도 썩을 양식에 불과했던 겁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 6,33)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빵은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인데, 바로 당신이 그 빵이라고 밝히십니다. 그저 배를 불리고 몸을 지탱하는 먹거리로서의 빵에서, 영혼을 살찌우고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으로서 당신의 존재를 내어 놓으시는 겁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복음 환호송)
예수님은 말씀으로, 성체로 당신 자신을 우리의 양식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양식은 그저 몇 시간의 에너지로 산화되는 육적인 빵을 넘어서, '이제와 항상 영원히' 생명의 근원이신 분과 함께 그 생명을 누리게 해주는 빵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육의 생명 너머 영의 생명으로 초대된 이들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 4,23-24)
우리가 취하는 영원한 생명의 빵, 곧 말씀과 성체는 썩어 없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받아 모신 우리에게까지 썩지 않는 불멸의 생명을 보증하십니다. 창조 때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 모상이 더욱 충만해지는 새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 백성의 양식은 노예살이의 빵에서 광야의 만나로, 그리고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으로 이어져왔습니다. 이 변천의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더,더, 더 극대화되면서 "자기 증여"의 절정에 이르렀지요. 이것이 아무리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크고 힘겨워도 노예살이의 빵을  되짚어 기웃거려서는 안되는 까닭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나날이 새 인간이 되도록 초대받은 우리 모두를 축복합니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성체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씀께서 늘 우리 곁을 지켜주고 계시니 힘을 내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다 함께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아룁시다.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입당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