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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 오상선 신부님 ~


전례력으로 2021년 나해 마지막 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누구를 임금으로 여기는지 물으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우리 임금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인들만의 임금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의 임금이십니다. 빌라도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분의 나라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중동의 어느 한 영토나 어느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 18,37)
진리이신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오셨고, 그분 곁에 머물러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바로 그분의 백성입니다. 주님의 백성은 진리를 듣는 이들입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호사를 과시하지만 우리의 임금이신 예수님은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재판을 받으시고 사형틀인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어둠의 우두머리와 진리의 수장이 선 자리는 이렇듯 극과 극입니다. 우리는 어느 깃발 아래 머무를 것인지 결단해야 합니다.

제1독서는 사람의 아들께서 온 세상의 통치권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4)
다니엘 예언자는 환시 중에 임금의 대관식과 같은 장면을 봅니다. 사람의 아들께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지고, 모든 사람의 섬김을 받으시는데, 흥망성쇄를 거듭하며 주인이 바뀌는 세상의 권좌와 달리, 그분은 영원히 통치하실 것입니다.


제2독서는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알려 줍니다.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묵시 1,6)
주인들의 주인, 임금들의 임금이신 예수님은 하느님 백성인 우리를 사제로 부르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 나라를 이루어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분과 소명을 살아가지만 하느님을 섬기는 보편 사제직으로 불리웠으며, 언제 어디에서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충실히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입니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영성체송)
우리는 진리를 듣고 하느님을 섬기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어좌 아래로 모여든 이들입니다. 하여 아직 재물이 더 좋고 권력과 허세에 더 끌린다면 이 자리가 매우 불편할 겁니다.


겸손하고 가난하신 우리의 임금께서 당신 백성에게 주시는 선물은 "평화"입니다. 세상 권력의 부스러기인 재물이나 권력과 사뭇 다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모시는 이는 가난해도 평화롭고, 모욕과 업신여김을 당해도 평화를 잃지 않습니다. 질병과 고통 중에도, 죽음의 순간에도 평화를 누리지요. 이 평화가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강복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희로애락에 따라 요동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는 그리스도왕을 따라, 우리가 더 선하고 겸손하며 가난하고 진실된 사제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임금님과 백성이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면,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머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감사하며 또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은총의 한 주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녹록치 않은 삶의 현실 속에서 지치지 않고 말씀 곁으로 모여와 진리를 듣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