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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녀 세실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미사의 말씀은 봉헌의 내적 자세를 헤아리게 해 주십니다.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루카 21,2)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난해 보이는 어떤 과부에게 눈길을 주십니다. 보통 관심 있는 부분으로 시선이 가기 마련이지요. 봉헌은 당사자와 하느님 사이의 일이니 액수가 많건 적건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되지만 헌금의 양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일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가 헌금함까지 나아가 손을 뻗기까지 어쩌면 용기도 필요했을 것 같지요. 하지만 예수님께는 헌금의 액수가 아니라 간절함과 용기가 곧 의탁의 크기입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4)
예수님은 액수가 아니라 마음을 보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세상이 정한 수량의 기준으로는 분명 미소하지만, 가진 것을 다 넣는 그녀의 용기는 어느 누구보다고 큽니다. 현재 자신이 가진 것, 그리고 미래까지도 모조리 바치고 싶은 마음은 믿음과 사랑에서 우러납니다.


제1독서는 바빌론으로 유배를 간 이스라엘 귀족 청년들 이야기입니다.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다니 1,8)
그들은 이방인에게 끌려가서 낯선 문화와 풍습을 억지로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어쩌면 목숨을 보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일지 모르는데, 패망한 민족 고유의 신앙과 율법, 관습을 지키는 일이 호락호락할 리 없지요. 그래도 그들은 용기를 냅니다.


"하느님께서는 ...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셨다."(다니 1,9)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를 능통하게 해 주셨다. ...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다니 1,17)
하느님께서 이르신 것을 지키려는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낸 이는 이스라엘의 네 젊은이들이고, 그들을 보호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들을 가상히 여기신 하느님께서 관리하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또 그 젊은이들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채워 주셨지요.


"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입당송)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체칠리아 성녀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지키려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입니다. 박해의 칼날 앞에 왜 무섭지 않았겠습니까마는, 인간적인 두려움을 내려놓고 아무 계산 없이 자신을 하느님 앞에 예물로 내놓는 사랑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분께서 그 온전한 봉헌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주셨지요.


우리는 저마다 가진 것도 다르고 그 종류와 수량은 더더욱 천차만별일 겁니다. 가난하고 미소해도 주님 앞에 나설 수 있는 건, 주님이 당신께 무어라도 드리고 싶어하는 바로 그 사랑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부족하나마 마음을 다해 사랑을 바치고 용기를 내어 의탁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의 막막한 처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향하는 발길을 멈추지 않는 사랑을 그분께서 알아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마음을 보시는 분이어서 참 다행이고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