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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33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미사의 말씀은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루카 20,33)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두가이 사람들의 얼토당토 않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기에 이스라엘의 결혼 관습이 부활 이후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따지듯 묻습니다. 부활 신앙의 모순을 주장하고 싶은 듯 보이지요.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 20,35-36)
이 말씀은 우리의 부활 신앙을 선명히 담고 있습니다. 부활 이후의 삶은 이 세상의 육적 질서를 뛰어 넘기에 혼인과 자손 번식에 매이지 않습니다. 정욕과 생로병사는 이 지상에서 육체를 껴입고 있을 때의 일이니까요. 믿음으로써 죽음을 지나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간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점점 더 닮아가서, 순수하고 담백하며 정결하고 조건 없이 헌신하는 사랑이 되어갑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38)
우리가 하느님을 오해하게 되는 건 많은 경우 그분을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저 멀리 가상 세계에 따로 떼어 놓고 그곳에서 영들이나 죽은 이들만 상대하신다고 여기는 거지요. 하지만 살아 계신 하느님을 믿으며 이제와 같이 영원에서도, 땅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 그분 현존 안을 거니는 신앙인에게 생과 사는 연장선 안에 펼쳐져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모든 이는 살아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비록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라도 그분에게서 존재를 받아 생명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께는 모든 이가 그분 눈 앞에 생생히 살아 있고, 인류 최대의 난제인 죽음도 그분과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습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에 치욕을 안겼던 한 악인의 죽음을 보여 줍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1마카 6,12-13)
잔혹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과 정신, 관습을 파괴하던 안티오코스는 목숨을 걸고 항쟁하는 유다인들에게 연이어 패배합니다. 결국 그 충격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지요. 그는 죽음 앞에서 자기 만행을 떠올리며 지금 겪는 고난의 이유를 찾아냅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짓밟음으로써 하느님을 대적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민족들은 자기네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자기네가 쳐 놓은 그물에 제 발이 걸리네. 가난한 이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화답송)
세상 권력과 재물, 명성과 자기 영광을 좇던 이에게는 생전 자기가 추구하던 욕망과 정욕, 탐욕이 덫이 되어 되돌아올 것입니다. 하느님이 안 계신 듯 달려온 삶은 영원한 죽음으로 내달리게 되겠지요. 살아 계신 하느님을 거부하고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업신여겨 생명이신 분께 죽음을 선고했으니, 어쩌면 스스로가 택한 결말입니다.


그들에게 억눌린 가난하고 가련한 이들에게는 "영원"이 주어집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께 영원히 소중하니까요. 지상의 가난과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며 소박하고 조촐히 자신을 내어놓은 그들은 바로 그 희망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더 이상 폭력도 착취도 눈물도 죽음도 없는 곳에서 하느님 앞에 영원히 생생히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의 삶을 집착도 회피도 아닌 충실한 수용으로 껴안고, 눈을 들어 영원을 희망하며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지금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믿고 희망하며 생명을 충만히 이어나갑시다.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영성체송)
이제와 항상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