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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7주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독서와 복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비'입니다. 1독서는 다윗이 원수같은 사울에게 베푸는 자비를 전해주고, 2독서는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살리는 영도 주시어 당신의 모습을 닮게 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노래합니다. 복음 또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예수님의 요청을 전해줍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꽤 요구하시는 것이 많으십니다. 원수 사랑부터 시작해서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한 권고들을 마치 작정하신 듯, 숨 쉴 틈도 없이 줄줄 나열하고 계십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보처럼 살아라!'란 말입니다. 이 말씀들 앞에서 각자가 느끼는 무게는 조금씩 다를 듯 싶습니다. 더러는 아마 속으로 "주님, 그렇게 하는 게 참 좋긴 한데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요."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없이 져주고, 당해도 참고, 빼앗겨도 더 내주고, 웃는 낯에 침 뱉는 이에게 계속 웃어주고, 못 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꾸어주고... 승리, 성공, 출세 지향의 세상은 어쩌면 이들을 '루져'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제 밥그릇도 못 챙기고 자기 보호도 못하는 좀 모자란 바보 정도로 치부해 제껴버릴 수도 있고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고들 말합니다. 남에게는 그렇게 말하면 그럴 듯한데, 사실 나는 그게 잘 안되지요.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런 걸 바라실까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터득된 자기애와 자기보호 본능을 넘어서도 따를 수 있을지 말지 한 이 권고들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우리가 이렇게 해야만 하는 첫번 째 이유는, 그냥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루카 6,27)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 각자에게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분 말씀은 한 획도 사라지지 않고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듣는 우리가 아무리 죄인이고 악해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할 수밖에요.

둘째 이유는, 제1독서에 나타난 다윗의 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누가 감히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고도 벌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1사무 26,9) 질투에 사로잡혀 자기를 여러 차례 죽이려 한 사울을 처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다윗은 사울이라는 악인이 아니라 그 너머로 그를 부르신 하느님을 봅니다. 아무리 하느님께서 뒤늦게 후회하신 부르심일지라도 이스라엘의 첫 임금으로 사울을 지명하신 하느님께 대한 존중과 경외심으로 피조물이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얼마나 귀하고 소중히 여기시는지 깨달은 이는 하느님께 귀하고 소중한 모든 존재를 귀하고 소중히 받아들임으로써 그분을 향한 경외심을 완성해 나가는 법이지요. 이렇게 자비를 베푼 덕에 다윗은 더욱 위대한 군주요 성왕이라 불리게 됩니다.

셋째 이유의 핵심은 "너희 아버지처럼"(루카 6,36)이라는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생물학적으로 부모를 닮지요. 유전자라는 육의 질서상 그럴진대, 영의 질서상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과 비슷하게 손수 빚어 숨까지 불어넣어 주신 인간이 자기 존재의 근원을 닮는 건 당연하지요. 각자 삶의 질곡을 거치는 동안 때 묻고 오염되고 일그러지긴 했어도, 우리 존재 어딘가에는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우리 인간도 자비로울 수밖에 없다는 불가항력적 진리가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흙으로 된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1코린 15,49)이라 이야기하며 우리가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음을 예견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으라고 해주신 많은 요구들 앞에서 답답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아하! 우리 아버지가 바로 이런 분이시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열하신 '제 밥그릇도 못 챙기고 자기 보호도 못하는 좀 모자란 바보'같은 분이 사실 바로 우리 아버지 하느님 자신이십니다. 그분의 자비는 세속의 눈 앞에 당신 스스로를 '루져'로 만들지언정,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루카 6,35)일지라도 어느 누구의 영혼도 구원의 길에서 놓치지 않으시는 분이니까요.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화답송) 하고 노래하는 시편 저자는, 어떠한 죄인도 그분께는 "가여운 자식"(화답송 참조)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그분의 무기는 '자비'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화답송에서 노래하듯이,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를 기억하며, 우리도 그분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십사 두손 모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