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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교회의 반석으로 불리움 받았음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미사의 모든 말씀들이 베드로 사도를 가리키면서 그를 언급하고 있지요.

그런데 저는 오늘 정작 베드로 사도보다 하느님이 사람을 대하시는 방식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축일의 주인공은 베드로 사도보다 오히려 주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가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입당송).

"돌아오거든"

미사 초입부터 우리는 앞으로 있을 베드로의 실책을 예감합니다. 돌아온다는 것은 떠남을 전제하는 표현이니까요. 슬프고 안타깝지만 예수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는 위기의 순간에 스승을 외면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이 모든 걸 예견하셨으면서도 그에게서 희망과 기대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돌아오거든"

이 말씀을 들을 당시에 베드로는 이 말씀을 거부하고 싶었을 겁니다. 속으로 '아니, 나를 어떻게 보시고... 나를 그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으시다니...' 하며 서운했겠지만, 잡히신 스승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도망친 뒤 후회가 밀려왔을 때에는 되려 이 말씀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었을 겁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밑바닥까지 훤히 아시면서도 믿어주는 분이시니까요.

"너는 행복하다 ...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탄복하시며 칭찬하십니다. 어마어마한 신비의 진실은 인간의 머리로 짜낼 수 없는 깊이에서 솟아납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 고백한 것 같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의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것 같습니다. 물질에 파묻혀 살아가는 현대인은 행복이 물질이나 권력, 명예에서 온다고 여기지만, 진정한 행복이란 정작 하느님께서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생각을 나누어 주시는 이들이 영으로 느끼는 기쁨과 충만함입니다.

친밀하지 않고는, 신뢰와 기대로 엮이지 않고는 신비를 알려 주는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나누어 주신 신비 한 조각, 생각 한 토막, 마음 한 줌이 이 곧 하느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마태 16,18).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9).

예수님께서 그를 반석으로 추켜세우시고 또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받침도 되고 문지기도 되라고 하시는 겁니다. 베드로의 약함을 아시면서 그리 쉽게 하느님 나라를 맡기시다니, 인간적 계산으로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지요. 예, 그래도 됩니다. 하느님은 원래 그런 분이십니다.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원로들에게 목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여러 모로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1베드 5,2)

그의 여러 지침 중 백미는 바로 이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이는 하느님 자비를 입은 이로서 하는 말입니다. 목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비이고, 하느님의 자비는 일개 죄인에 불과한 인간 목자의 자비보다 크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산상수훈에서 자비로운 사람은 자비를 입을 것이라 하셨지요(마태 5,7 참조). 자비로운 사람은 자비를 입고, 또 자비를 입은 사람은 그만큼 자비로운 사람이 됩니다. 이 아름다운 선순환의 시작은 나약하고 비참한 우리의 실존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베드로를 믿어 주고 기다려 주고 북돋워 주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도 그런 분이십니다. 교회처럼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하느님 나라의 받침이나 열쇠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작은 하느님 나라에서 미소하나마 댓돌도 되고 문고리도 될 수 있다고 믿어 주십니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러니 나약한 인간을 택하시어 당신 나라를 맡기시는 통큰 하느님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배팅을 믿고 따라가 봅시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오늘 베드로사도좌 축일에 특별히 우리 교종 프란치스코를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