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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재의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재의 수요일입니다. 또 어김없이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오늘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2코린 6,2).

이 영적투쟁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친히 나의 말을 들어주시겠다네요.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하시네요. 그러니 걱정말고 힘차게 시작해 봅시다. 그럼,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3)고 하네요. 사순절이라 회개와 보속을 실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단식을 열심히 하고, 십자가의 길 등 기도도 더 열심히 하고, 이웃들에게 자선도 더 베풀어야지 결심도 합니다.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네요. 사실 회개는 참회와 보속(옷을 찢음)이 동반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회개는 아니라는 겁니다. 진정한 회개는 내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세상 사는 근심걱정과 온갖 탐욕과 욕심,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 온갖 죄와 악습을 향해 있는 상태에서 방향을 바꾸어 하느님께로 향하라는 것입니다(마음의 찢음).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라는 사도의 초대가 바로 이 뜻이겠지요.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는데 우리는 그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늘 딴 데만 쳐다보고 있기에, 이제 그만 하느님께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이겠지요. 사랑 자체이신 분이 우리를 짝사랑하도록(풀톤 쉰 추기경) 내버려두지 않고, 같이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진정한 회개가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도 친히 우리가 하는 '단식과 기도와 자선'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 계시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시는 나의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고 보여주는 것이 되게 하라(마태 6,1-6, 16-18)고 권고하십니다.

기도와 단식과 자선은 하느님 앞에 선 피조물로서 자신을 그분께 합당한 존재로 닦아나가는 매우 중요한 수덕적 실천방식들입니다.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는 기도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단식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자선을 통해 공동체와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기의 죄를 씻고 새롭게 출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백성들이 지켜온 이처럼 귀한 종교행위를 존중하시되, 그것이 더욱 가치로운 "마음의 봉헌"이 되는 길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2).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사순절 담화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피조물의 선익에 이바지하고, 우리가 하느님 자녀답지 않게 살게 될 때 그릇된 욕망에 빠져 죄의 노예가 됨을 지적하시면서, 그 죄로 인해 하느님의 동산을 황무지로 만들고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 엄청난 파괴력을 확산시켜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교황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피조물은 하느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들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실제로, 하느님 자녀들이 나타남으로써, 피조물도 파스카를 경축하며 새 하늘과 새 땅에 자신을 열 수 있습니다(묵시 21,1 참조). 파스카를 향한 여정에서, 우리는 참회와 회개와 용서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얼굴과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파스카 신비의 풍요로운 은총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이 ‘간절한’ 기다림은 하느님 자녀들이 나타날 때 실현될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인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이 회개에 따르는 ‘산고’에 온전히 참여할 때에 실현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모든 피조물은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도록” 부름받았습니다(로마 8,21).

사순 시기는 이러한 회개의 성사적 표징입니다. 사순 시기는 그리스도인들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 생활에서 무엇보다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통해 파스카 신비를 더욱 깊이 구체적으로 드러내도록 초대합니다.   
    
단식은 타인과 모든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을 채우려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우리 마음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사랑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게 해 줍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우상 숭배와 자만을 버리고 주님과 그분 자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자선은 우리가 관장할 수 없는 미래를 스스로 보장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으로 자신만을 위해 살고 모든 것을 움켜쥐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피조물과 우리 각자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계획의 기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 계획은, 우리가 하느님과 우리 형제자매와 온 세상을 사랑하고 이러한 사랑 안에서 우리의 참 행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보내신 ‘사순 시기’는 그분께서 피조물의 광야로 들어가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광야를 원죄가 있기 전에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던 동산으로 복원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마르 1,12-13; 이사 51,3 참조). 우리의 사순 시기도 이와 같은 길을 따르는 여정이 되어, 그리스도의 희망을 피조물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피조물은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로마 8,21).

이 은총의 시기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맙시다! 우리가 참된 회개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우리의 이기심과 자아도취를 뒤로하고 예수님의 파스카를 향해 돌아섭시다. 어려운 우리 형제자매들의 이웃이 되어 우리의 영적 물적 재화를 그들과 함께 나눕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우리의 삶 안에 실제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모든 피조물에게도 그리스도 승리가 가져다 준 변모의 힘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누구에게나 "때"가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 자기 삶만 돌아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때"를 그저 지나치거나 흘려보냈습니까! 무지해서도 그랬고 게을러서도 그랬고 두려워서도 그랬고 또 아직 탐욕이나 욕망과 결별하기 아쉬워서 모른 척하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알고도, 모르고도 "때"를 놓쳐온 우리에게 사도 바오로의 입을 빌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물러서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지금!" 바로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

이 사순절에는 사람 앞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마음을 다해 설 수 있기를, 하느님께서 이미 당신 등 뒤로 던져버리신 옛 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기를, 숨어 계신 주님 안에 깊이 깊이 숨어 들어 겸손하신 그분과 온전히 하나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바로 지금이 그 "때"입니다. 은혜로운 사순절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