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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8주일 / 오상선 신부님 ~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45)

여러분은 선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악한 사람입니까? 아마도 선한 사람인데 가끔은 열 받으면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하겠지요. 사실 모든 사람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내 눈에 어떤 사람이 악하게 보인다해도 그때 그사람이 열 받아 그런 것이지 항상 악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 어떤 무시무시한 범죄자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둘도 없는 천사가 된답니다.

문제는 마음이지요. 내 마음이 맑고 평화로우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모든 사람이 다 착해 보이는데, 반대로 내 마음이 어둡고 온갖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면 세상은 지긋지긋한 악의 소굴이 되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밖에 모르는 악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겠지요.

오늘 내가 나쁜 사람, 악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다시한번 바라보십시오. 눈을 감고 내 마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내 마음이 맑다면 그는 더이상 악한 사람이 아닐 겁니다. 여전히 그렇게 보인다면 내 마음이 더 맑아지도록 노력하며 '내 탓이요' 할 수 있는 오늘 꾸미시길 빕니다.

하느님 모습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모두 그분의 선함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하지만 원죄로 인해 인간 본래의 선성(善性)에 균열이 생긴 뒤로, 인간은 매순간 선과 악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자기의 근원이신 선한 하느님을 닮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선하기만 할 수 없고 또 악하기만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선한 마음의 곳간"이라 하시지 않고 "마음의 선한 곳간"이라고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악한 마음의 곳간"이라 하시지 않고 그저 "악한 곳간"이라고만 하시지요.

사실 우리 마음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합니다. 하느님만, 빛만, 선함만, 진실만, 아름다움만, 거룩함만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실상 그곳에는 어두움, 악, 거짓, 추하고 속된 욕망이 동거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내게 닥친 일 앞에서 마음의 "선한 곳간"의 문을 열 것인가, "악한 곳간"의 문을 열 것인가는 온전히 각자의 몫입니다. 이 선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불이익이 오더라도 꾸준히 선한 곳간의 문을 선택했던 기억과 지향과 의지가 쌓이고 쌓여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선한 곳간"이 점점 넓어지면 "악한 곳간"은 반비례적으로 쪼그라들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곳간"을 선택하는 빈도가 줄어들다 보면 그 문은 녹 슬고 부식되어 아예 열렸던 기억조차 희미해져 버릴 것이고, 그 안의 악한 것들도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지만, 각자가 받은 하느님의 모습을 각자 처한 환경과 실존 안에서 최대한 한껏 활성화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는 있습니다. 이런 이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루카 6,43)일 것입니다. 또 "형제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내"(루카 6,42)줄 수 있도록,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치우는 진실된 사람일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집회 27,6)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마음에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루카 6,45)이라고 하셨지요. 표현에 앞서 일차적으로 내면을 정화하고 하느님의 것, 선한 것을 선택해 존재 밖으로 내놓으라는 가르침이요 교훈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선악의 내적 투쟁이 동반하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록 각자의 나약함 탓에 죄로 기울기도 하고 넘어질 수도 있지만, 다시 몸을 세우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포기하지 않고 가다 보면, '마음속 선한 곳간'의 문 손잡이가 기름칠한 듯 더 부드러워지고 문도 거칠 것 없이 활짝 열리게 되어, 우리 몸과 영혼에 "좋은 습관"이 흠뻑 배일 것입니다. 그 "좋은 습관"이 곧 덕(德)입니다. 덕을 쌓는 길은 이렇게 끊임없는 선을 향하는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코린15,58) 누구보다 처절히 선과 악의 투쟁을 내외적 실존으로 살았던 바오로 사도의 이 격려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예수님의 요구들이 부담스럽습니까? 집회서 저자의 가르침과 사도 바오로의 초대가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까? 대충 악을 선택하며 세상과 화합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싶습니까? 하지만 선악의 선택의 순간에 떠오르는 이런 요구들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분 마음에 들었기에 넓은 들로 이끄시어 나를 구하셨네."(입당송) 사실 이 요구들은 주님 마음에 든 이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입니다. 더 깊이, 더 근원으로, 더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당신 마음속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벗님들, 지금까지 그러하였듯이 이 초대를 받아들여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코린 15,58) 마음 속 선한 곳간을 가득 채우는 한주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