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활 제5주간 금요일(사도 15,22-31; 요한 15,12-17) |
제1독서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5,22-31
그 무렵 22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0 사람들이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자,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 놓고 편지를 전하였다.
31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2-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다."(요한 15,1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우리를) 친구라 부르십니다! 종은 수직적 · 종속적 상하 관계에서 오지만 친구는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입니다. 그러니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주님의 친구로 불린다는 건 참으로 황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언젠가 아주 어려운 일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며칠 전에 다가올 일을 대충 짐작하게 해주는 꿈을 꾼 것이 떠올라 힘들지만 응답을 했었지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미리 암시해 주신 것 같이 느껴져서 였읍니다.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을 자상하고 섬세하게 존중해 주신 것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지요.
그분은 저만치 윗자리에 올라선 채 눈을 내리깔고 "너 따위는 몰라도 돼!" 하는 권위주의적이고 심술궂은 주인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약한 만큼 더 세심하게 살피시며 눈높이에 맞게 말을 걸어오는 분이시지요. 그분의 이런 자상하고 겸손한 배려와 사랑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나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굳이 캐묻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랑"이 하시는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하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계명", "열매", "명령"은 모두 "사랑"을 가리킵니다. 당신이 곧 사랑이고, 아버지가 사랑이시니 우리도 당연히 되어야 할 "모습"이지요.
제1독서에서는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전달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 대목에는 "우리"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먼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로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에게 옛 유다의 관습을 강요해 혼선을 주었던 이들을 "우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 여러분에게 가서 놀라게 하고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사도 15,24)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들도 "우리"의 범주 안에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체면을 유지하고 비판을 피하려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비겁함을 선택하지 않고, 다만 그런 의견이 "우리" 전체의 뜻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
예수님에게서 "친구"의 지위를 얻은 사도와 원로들은 이 결정이 "성령과 우리"의 뜻임을 밝힙니다. 실제로는 결코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는 두 존재, 하느님의 영과 피조물인 인간이 함께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이는 하느님 편의 무한한 겸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인데, 예수님은 "사랑"으로 이를 가능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사도 15,31)고 합니다. 그들의 기쁨에 함께 머무릅니다. 그들은 몇몇 주장 앞에서 어찌할 바 몰랐던 혼란에 대해 이해받았고, 이제 갓 태어난 신앙의 약함을 존중 받았습니다. 또 자기들 문화와 풍습에 맞추어 신앙을 살아갈 방법을 배려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모교회의 "친구"가 되고 또 "우리"가 되었음을 확인하니 얼마나 기뻣을까요! 하나이신 하느님의 자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받은 그 기쁨을 무엇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일상을 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 온 세상에 깃든 하느님의 뜻에 깨어 있다면, 우리는 자분자분 당신의 마음과 뜻을 나눠주시는 주님의 자상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친구고, 그분과 함께 "우리"니까요. 우리끼리는 '척! 하면 척!' 서로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습니다. 이 "우리"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신뢰는 아무리 깊고 어둔밤이 다가와도 신뢰와 인내라는 마음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게 해 줄 겁니다.
그래서 오늘, 벗님과 함께 "우리" 이렇게 고백합시다. 친구 예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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