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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6주일 / 오상선 신부님 ~

 
제1독서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기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5,1-2.22-29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22 그때에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천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21,10-14.22-23
10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22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3ㄴ-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부활 제6주일의 말씀은 온통 '사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은 순수 영(靈)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 감각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서 육(肉)을 취해 우리게 오셨지요. 그분이 바로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드리는 사랑은, 한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 원형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까요.(1요한 4,8 참조)

우리가 부족하나마 말씀에 머무르며 주님께 드리는 사랑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빠져들고 잠깁니다. 사랑 가득한 그 상태를 인간의 언어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부족한 저로서는 기껏해야 "성부 · 성자 · 성령, 삼위 하느님의 사랑의 도가니, 사랑의 용광로, 사랑의 바다"라 표현해 볼 뿐입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그래도 뭔가 가득차고 충만한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삼위 하느님 사랑 안에 푹 잠기며 그분과 사랑을 나눕니다.

제1독서인 사도행전 대목에서는 앞으로 펼쳐질 교회 역사에서 "하나됨"을 위해 주요 장치가 될 공의회의 첫 시작을 보여줍니다. 사도와 원로들이 모여 성령 안에서 성자의 가르침을 통해 성부의 뜻을 찾는 이 제도는 교회의 일치를 목적으로 하지요. 여기서는 그 회의가 열린 동기와 결과가 소개됩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사도 15,23)

교회 역사가 수천 년을 지나오는 동안 공의회에서 신학적으로 매우 전문적이고 첨예한 문제들이 다루어지다 보니, 단순하고 소박한 다수의 대중은 적극적 문제 제기나 참여에서 소외되기는 하였지만, 원래 그 본질은 다음 말씀에 잘 담겨있습니다. 곧 "형제가 형제에게", 그리고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몸'이면서도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실체이기에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처럼 완전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사도 15,26)라며 예루살렘 사도들과 원로들이 보증한 '환상의 콤비' 바르나바와 바오로도 곧 갈라지게 될 것이니까요.(사도 15,36-41) 물론 이 또한 하느님의 큰 그림 안에서 열매를 맺을 과정이기에 미리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아무리 돈독하고 거룩한 지향으로 뭉쳤어도 한계가 있다는 걸 우리는 체험으로 알지요.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삼위 하느님의 사랑의 관계를 어느 정도 흉내내고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지상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겠지요.

제2독서인 요한묵시록에서는 천상 예루살렘, 즉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의 본향이며 이상이고 꿈의 결정체인 하느님 나라를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묵시 21,11)

빛, 광채, 수정, 보석, 벽옥... 인간으로서 떠올릴 수 있는 최고로 귀하고 아름답다 할 표상으로 가득합니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나름 한계를 느끼면서 이 대목을 옮겼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상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전하고픈 그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23)

과연 성전도 해도 달도 필요 없을 겁니다. 성전과 해와 달이 가리키는 분께서 친히 현존하시며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우리와 사랑을 나누시는데 그분과 우리 사이에 더 무슨 상징이, 무슨 장치가, 무슨 제도가 필요하겠습니까!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모두 똑같을 수 없지만 우리는 아직 좀 더, 어쩌면 한참 더 지상의 순례길을 걸어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묵시록이 보여주는 하느님의 천상 아름다움 속으로 당장이라도 달려가 풍덩 빠지고 싶어도, 지금 여기서 채워야 할 묵묵하고 인내로운 걸음걸음이 아직 우리 각자에게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하면서 나아가야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 말씀에 머무르고 그분 가르침을 지키는 것, 이것이 지금 여기서 삼위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랑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애써 봐도 그 수준인 초라하고 가난한 사랑일망정, 하느님 사랑의 한 조각이라 믿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