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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0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1열왕18,20-39/마태18,20-39)

제1독서

<이 백성이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8,20-39
그 무렵 아합 임금은 2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하였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
23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24 여러분은 여러분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에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그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26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27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28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29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30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이리 다가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31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32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33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34 그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35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36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37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말씀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들을 완성하러 왔다고 선언하십니다. 기존 종교 지도자들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예수님에 대해 의구심과 의혹이 술렁이기 시작하던 차입니다.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은 절대 가치를 지닙니다. 다만 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가중된 부수적 규정들에 본질적 정신들이 가려져 버렸지요.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사랑이며,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율법의 완성임을 몸소 보여 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마태 5,18).

그런데 예수님께서 율법의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시한을 언급하신 걸 보니, 율법이 영원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율법도 변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예수님은 구약 성경이 당신에 대해 예언한 바를 모두 이루시고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희생제사를 바치십니다. 사랑만이 그 동기이고 목적이지요. 이제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 이스라엘이 새 계약을 통해 주님의 백성이 됩니다. 율법은 이 모두를 준비하고 지탱하지요.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그러나 여전히 여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새 하늘 새 땅에서 맞이할 새 예루살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는 성전이 없다고 합니다. 성전이신 분이 현존하시니 그렇습니다. 이어 묵시록 저자는 그 도성에 해도 달도 필요없다고 하지요. 빛이신 분이 계시는 그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면, 율법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이신 분이 현존하시는 앞에서 조례나 판례를 뒤적이는 건 좀 우스꽝스러울 것 같습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셨으니 이제 율법은 사랑이 되어 존재할 것입니다.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마태 5,19).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그분 자신이 말씀이시고 사랑의 완성이시니까요. 예수님은 인간인 우리의 약함을 잘 아시면서도 우리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지키는 바를 가르치는 존재가 되길 바라십니다. 곧 사랑하고, 사랑을 전파하는 존재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를 제1독서에서 만납니다.

제1독서에서는 매우 극적인 장면이 벌어집니다. 사백오십 명의 바알 예언자들과, 단 한 명 남은 주님의 예언자 엘리야와의 대결입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1열왕 18,21)

엘리야가 먼저 온 백성에게 묻습니다. 야훼 하느님의 백성이면서 당장 이득만 된다면 적당히 다른 우상들을 기웃거리며 섬기는 행태에 도전장을 내미는 겁니다. 절뚝거린다는 표현은 두 다리의 균형을 잃은 모습을 희화한 것이지요. 앎과 삶, 지식과 실천, 신분과 태도가 통합되지 않으면 겉보기엔 제대로 걷는 듯해도 실은 영혼이 절뚝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에서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도 같은 의미의 권고를 서간에 담았습니다.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마음으로는 세속을 원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라"고 하셨던 권고의 다른 표현으로 들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시는 것은 믿음과 실천의 일관성, 통합입니다. 그리고 사랑만이 이 둘을 아우르며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1열왕 18,36).

엘리야의 고백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이루실 표징이 제 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자신과 거기 모인 모든 이에게 선포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그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말씀에 따라 행하는 존재일 뿐임을 명확히 합니다. 말씀을 사는 사람의 근본 정신이고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말씀의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알게 된 사랑을실천하는 사람이지요. 그 자신이 곧 복음입니다. 말씀과 함께 하루하루를 사랑으로 엮어가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고 나누며 말씀의 향기를 퍼뜨리는 벗님은 진정 "하늘 나라의 큰사람"(마태 5,19 참조)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