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어린양은 살해되시고, 자신의 피로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셨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5,1-10
나 요한은 1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2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4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5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6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7 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8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10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두 울음을 만납니다.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기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묵시 5,4)
요한 묵시록 저자는 환시 속에서 어좌에 앉은 분이 들고 계신 두루마리를 봅니다. 일곱 번 봉인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철저히 가려진 신비라는 의미겠지요. 하지만 이 두루마리를 들여다보기에 합당한 이가 없다는 사실에 그는 슬피 웁니다. 아직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묵시 5,7)
요한은 이내 울음을 그칩니다.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그 두루마리를 펼치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묵시 5,6)이라고 묘사됩니다. 일곱 개의 뿔은 완전한 권능을, 일곱 개의 눈은 완전한 지혜와 예지, 성령의 충만함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묵시 5,8)
네 생물과 원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립니다. 수금은 찬미와 찬양을, 향은 흠숭과 경배입니다. 그들이 바치는 향은 주님을 믿는 거룩하고 충실한 이들의 기도입니다. 희생되신 어린양이 온 인류의 염원과 사랑을 받아 마땅한 분이심을 드러내지요.
두루마리, 즉 하느님 말씀을 펼쳐 이 세상에 구원의 지평을 열어 주실 분은 계시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은 구원자가 부재하는 듯한 절망의 울음을 멈추고 그분께 올려지는 새 노래를 듣습니다. 새 노래는 곧 이루어질 하느님 나라의 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루카 19,41)
예수님께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며 우십니다. 안타까움의 눈물입니다. 평화의 도성이라 불리지만, 이스라에 역사 안에서 수차례 유린되고 짓밟혔던 곳이고, 또다시 이민족의 칼날에 무참히 부서지지게 될 비극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불신과 불륜으로 하느님을 떠나 제 욕망을 채우던 이들이 맞을 슬픈 운명이 되겠지요.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루카 19,44)
예수님의 탄식 안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안타까움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이 평화의 임금을 알아보지 못했고, 때가 되어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을 간과한 탓입니다.
예수님의 애끓는 눈물은 그분께서 원하시는 바를 알려줍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화가 물질이나 겉모습, 권력에 있지 않고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누리는 화해와 일치에 있음을,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때를 놓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함을 우리는 예수님의 탄식에서 듣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묵시록 저자가 본 이 아름다운 광경은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우리의 기도가 지상에서는 물론 천상에서도 주님께 흠숭과 경배로 올라간다는 뜻이니까요. 요한은 어린양의 현존으로 위로를 받고, 주님은 우리의 향기로운 기도로 위안을 받으실 것입니다.
자신을 기도 안에 불살라 향으로 올리는 이는 진정한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오신 주님을 깨어 맞이하지요. 주님 안에서 누릴 평화란, 창조 때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움과 진실과 선함이 충만하게 피어나는 상태일 겁니다. 그렇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때 우리는 주님의 평화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 세상과 천상에서 주님께 향기로운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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