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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33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4,1-11
나 요한이 1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4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5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6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7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8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9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11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의 날을 준비시켜 주십니다.

복음의 비유 안에는 두 개의 축이 교차합니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는 이야기 하나, 그리고 그 귀족이 재산을 나눠주었던 종들과 셈을 하는 이야기 하나입니다. 이 두 주제는 언젠가 주님을 맞이할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임금으로 오실 때 우리는 그분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총의 열매에 대해 셈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루카 19,15)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떠났는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해서 사절을 보내어 반대 의사를 올립니다. 마치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음모를 꾸미던 당시 종교 지도층의 움직임을 투영하는 듯하지요.

그런데 이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귀족은 왕권을 받고 돌아옵니다. 우리의 예수님도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시면서 세상에서 제거되는 듯 보였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지요. 그리고 언젠가 "사람의 아들의 날"이 오면 세상을 심판할 권한을 가진 평화의 임금으로 오실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루카 19,17)

이제 임금이 된 귀족이 종들과 셈을 합니다. 각각 나눠 주었던 한 미나를 어떻게 운용했는지 보려는 겁니다. 주인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성실히 불린 이들은 착한 종이라 칭찬을 받습니다. 그리고 불린 배수만큼 고을을 얻지요. 작은 일에 성실한 그에게 주인은 큰일을 선뜻 맡깁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루카 19,26)

각자가 받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감사하며 가꾼 사람은 자기가 얻은 인간적 수확 이상의 것을 도로 받습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계산 방식이 달라집니다. 세상의 논리와 합리적 숫자를 초월해서 생각도 기대도 못한 선물이 뒤따르는 겁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이 중요해 보이든 하찮게 보이든, 크든 작든, 이는 영혼의 종자 씨앗입니다. 왜 주님께서 내게 이것을 주셨는지 진지하게 숙고하고 기도하면서 답을 찾아야 하고, 나에게 걸고 있는 그분의 기대를 등대 삼아 성실히 나아가야 합니다.

제1독서의 환시 속에는 찬양이 가득합니다.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묵시 4,8)

장엄하고 엄위롭고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서 모든 천상 존재들이 그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자 같고, 황소 같고, 사람 같고, 독수리 같은 네 생물은 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그들이 쉬지 않고 줄곧 주님 곁에서 환호하며 영광과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 가득하신 하느님 앞에서 피조물이 드릴 것이란 찬양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요!

하느님께 지음 받아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 지상에서 삶을 꾸려 가면서도 늘 천국 본향을 그리워합니다. 처음 하느님과 하나였던 존재적 기억이 우리를 그분께로 끊임없이 이끌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물리적으로 이렇게 떨어져 있는 듯 해도 실은 언제나 그분 현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존재적 상태여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처음 그분에게서 받은 영혼의 종자씨는 어떻게 커가고 있는지요? 사람들은 비유 속 미나, 혹은 탈랜트를 재산이나 능력, 인기, 인맥 정도로 착각합니다만, 진정 우리가 감사하며 성실히 불리고 키우고 확장시켜 주님께 돌려드릴 재산은 하느님과 우리 영혼의 관계일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사람의 아들의 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가 드릴 것이 무엇인지 관상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세속 재산에 골몰해서 하느님을 위한 빈 자리까지 거래하지는 않았는지, 사람에 집착해 하느님을 차선으로 미루지는 않았는지, 외형과 능력만 돌보다가 영혼이 쪼그라들지는 않았는지...

이 지상의 삶에서 "밤낮 쉬지 않고" 감사와 찬미와 찬양을 멈추지 않고 올려드린 영혼은 그토록 그리던 주님과 충만하고 흡족한 사랑의 일치를 이룰 것입니다. 비록 녹록치 않은 인생살이 안에서도 영혼의 거룩함과 깊이를 더해가는 벗님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