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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대림 3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는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24,2-7.15-17
그 무렵 2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4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5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6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7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15 그러고 나서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들에서 우리는 '오시는 분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파견되셨는가?' 하는 물음을 대면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마태 21,23)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다가와 이렇게 묻습니다. 말하자면 '자격' 논쟁이지요. 한낱 떠돌이 설교가인 목수 출신 가난뱅이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중심지인 성전에서 공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이 과연 있느냐 하는 물음일 겁니다.

사실 예수님은 레위 지파나 아론 가문이 아니십니다.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파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시지요. 전통적인 교육을 받지도, 어느 계보를 잇거나 소속이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그 흔한 타이틀조차 없으시지요. 이런 예수님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아마도 무자격자에 가깝겠지요.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마태 21,25)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요한에게 해당하는 답이 곧 예수님께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나 예수님 모두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존재들이기에 모든 권한을 하느님에게서 받았습니다. 하지만 "권한"을 인간적인 것으로 끌어내려 제도화한 이들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세속화하고 권력화해서 거머쥔, 곧 사유화한 "권한"에 줄을 대지 않은 모든 행위는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우매한 민중을 교란시킬 수 있는 도전일 뿐입니다.

"모르겠소"(마태 21,27).

사실 하느님의 신비 앞에서 "모르겠습니다"라는 인간의 고백은 피조물로서 참으로 솔직하고 진실된 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의 종교 지도자들과 원로들은 그만큼 겸허하거나 진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답을 모르지 않는 그들이 모른다는 답을 택합니다. 답을 고르다 보니 자기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걸 안 게지요. 그래서 불리한 답을 하느니 차라리 모른다고 하는 편을 선택합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태 21,27).

그런데 예수님은 '나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고 "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이신 그분이 모르실 수 없으니, 혹 모른다고 하시면 거짓말이 될 겁니다.

발설되지 않은 말씀이 웅변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그분 자신이 말씀이시고, 그분의 가르침과 용서, 치유와 기적 등 모든 것이 "이루어진 말씀, 실행된 말씀"이십니다. 굳이 언명체계를 통해 답하시지 않아도 그 답은 이미 선포되었고 이루어졌으며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무언으로 답을 하신 겁니다. 사실 그 답은 묻는 이들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한 상태였을 겁니다.

제1독서에는 발라암이라는 이방인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의 수효에 겁을 먹은 모압 임금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발라암을 불러 요청한 것입니다.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민수 24,5)

그런데 그는 저주를 내리라는 모압 임금의 채근(採根)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에게 경탄을 보내며 도리어 그들을 축복합니다.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민수 24,4)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

이방 예언자의 입을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이 이루실 일을 말씀하십니다. "별"은 모압을 물리친 다윗 임금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미래에 도래할 메시아까지도 암시합니다. 먼먼 구약시대 초기에 오늘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방인의 입을 통해 언급되신 것이지요.

발라암도 모압 임금도 참 당황스러웠겠지요. 발라암을 부른 모압 임금은 제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되려 적에게 좋은 일만 한 꼴이 되었고, 발라암 역시 부탁받은 바를 이행하지 못했으니까요. 발라암은 후일 이스라엘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만(민수 31,8) 적어도 그는 제 이익을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조작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전한 성경 속 인물로 남습니다. 그로써 그의 예언자적 권한이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속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도 하느님의 영께서 일러주신 것만을 전하십니다. 그 말씀이 당신께 해가 되어 돌아온다 해도 굽히지 않으시지요.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 "모른다"고 발뺌하는 종교 지도자나 원로들과는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느님에게서 모든 권한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용서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고 바람입니다. 사실 세상에 마련된 제도와 조직, 소속과 권한은 세상의 편의와 질서를 위한 것이니 존중해야 하고, 그것이 신적 질서와 맞닿아 있다면 더욱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다만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 나라를 목도(目睹)하면서도 그 앞에서 자격부터 따지는 모습은 영역 다툼이나 밥그릇 싸움처럼 치졸해보여 낯뜨겁습니다.

하늘 나라의 질서를 제 식대로 조작할 때, 하느님 말씀에 자기 본위를 섞을 때 권한은 힘과 빛을 잃습니다. 모르는 것 같지만 대하는 사람들이 다 느끼지요. 그럴수록 인간적인 힘과 제도를 보완하고 치장하며 권한을 강화하려 해도 "하느님의 영"(민수 24,2)이 퇴색된 권한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결국 그들은 하느님 뜻을 점점 더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권한을 받은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까? 그분이 선포하고 이루시는 "어질고 바른"(화답송)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있나요? 혹 성당에서나 그 권한과 질서를 믿고 따르다가, 집과 직장과 모임과 관계 안에서는 철저히 세상 이치를 추구하는, 분열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러다가 혹 오시는 주님 앞에서 누구들처럼 "모르겠소" 하고 발뺌하게 되지는 않을런지요...

성탄을 향해 더 깊고 진하게 무르익어가는 이 기다림의 시기에 권한 논쟁이 던지는 화두에 진솔하게 머무르는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이사 24,16)는 복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