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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 오상선 신부님 ~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제1독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1,5―2,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5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18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다소 무겁습니다.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유다인들의 임금이 될 아기가 태어났다는 동방 박사들의 말에 불안해진 헤로데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기들을 무자비하게 죽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을 빠져나간 뒤에 벌어진 일이지요.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마태 2,13)

하느님께서 천사를 통해 성가정을 이집트로 피신시킨 덕에 아기 예수님은 목숨을 건집니다. 다른 아기들이 하느님께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예수님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마태 2,18)

이 복음 말씀은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삼키고, 그저 아기를 잃은 베들레헴 어머니들의 슬픔을 애도하고 연민하게 되지요.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피해를 입거나 죽음을 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의도해서 떠안기도 하고,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지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아기 순교자들은 후자에 속할 것입니다. 이천 년 전에, 그리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이 세상 라헬들의 비통한 울음은 성모님의 슬픔 안에 함께 녹아 뒤엉켜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요한 서간의 저자는 타인을 위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1요한 2,2)

죄 없는 아기들이 제 목숨을 바쳐 수호한 아기 예수님께서 훗날 인류의 죄를 속량하는 어린양이 되시어 당신을 희생하십니다. 원죄의 그늘에 갇혀 있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의 짐을 벗고 영원한 생명을 되찾게 되었지요.

어쩌면 우리가 누리는 생명은 이처럼 다른 누군가가 희생한 생명 덕분일지 모릅니다. 이렇게 생명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건너온 것이지요. 우리가 먹는 음식부터, 태어나서 여태까지 받아온 보호와 돌봄, 의학과 법률과 신앙 등 모든 영역을 깊이 관상해 보면 자신을 비워 타인에게 보탠 생명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누리는 생명이 얼마나 무한히 가중된 무게의 가치인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생명 하나하나가 그토록 소중한 것인 게지요.
  

"이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이 바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으니,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리라."(영성체송)

교회는 육신의 소멸이 끝이 아님을 믿기에 순교자들이 누리는 천상 영광을 확신합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기에, 생명을 살리는 모든 희생은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하지요. 순교의 보상은 천상에서 누릴 지복직관의 행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축제 한가운데에서, 무죄한 아기 순교자들의 천상 탄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해 못하는 이 역설이 저마다 상실의 응어리를 한두 개씩 안고 사는 우리에게 어쩌면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기꺼이 내놓았건 잃어버렸건 우리가 이웃과 세상에 보탠 생명은 사랑과 위로로 배가되어 누군가를 좀 더 행복하게 해 줄 터이고, 우리 또한 지복의 희망을 선사받은 것이니까요.

오늘 세상의 모든 라헬들이 이 희망을 만나 눈물을 그치고 위로받기를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무죄한 죽음과 상실의 고통이 사라질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기도와 연민을 보태며 함께할 수 있기를 다짐하며 바래봅니다. 오늘 특별히 낙태로 인하여 영문도 모르고 생명을 잃게된 어린 영혼들을 미사중에 기억합니다. 주님, 당신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들에게 영원한 안식과 생명을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