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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제1독서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11-21
사랑하는 여러분,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악마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동생을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13 그리고 형제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여도 놀라지 마십시오.
14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3-51
그 무렵 43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44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45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바르톨로메오라고도 하는 나타나엘이 부름심을 받는 이야기를 우리는 복음에서 듣습니다.

 

복음 내용을 기반으로 나타나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그는 필립보의 친구였습니다. 아마도 필립보가 가장 좋아한 친구 중의 하나였을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보고 깨달은 좋은 것을 그 친구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 친구는 예수님이 극찬할 정도로(요한 1,47 참조) 진실한 사람이었고 건실한 유대교 신자로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동포들을 사랑으로 잘 대할 줄 아는 선한 의인이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법 없이도 살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고 거짓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워낙 확고한 인생철학과 종교관을 가지고 있는 터라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기는 어려운 성향이었을 겁니다.(요한 1, 46 참조)

 

여러분이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 중에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친구가 있겠지요? 참 좋은 친구고 모든 점에서 훌륭한데, 신앙이야기만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종교와 종교인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주워들은 지식으로 종교를 우습게 여기고, 종교인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자기 철학과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는 그런 친구 말이지요.

"성당 가봤자지 뭐. 교회는 뭐하러 가. 절에 가서 염불 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 제 딴엔 아주 유식을 떱니다. 참 답답하지요?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고, 지가 깨우쳐야 저 교만 덩어리를 깨부술 수 있을 텐데...

필립보에게 나타나엘은 바로 그런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필립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엘을 인내하며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자신이 억지로 설복시키러 애쓰지 않고 그냥 "와서 보기만 하라!"(요한 1,46)고 초대합니다. 그냥 한 번만 가 보자고 합니다.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초대하고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따라나서는 우정이 아름답습니다. 벗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주고싶어 하는 그 마음과 벗의 그 마음을 아는지라 벗을 위해 기꺼이 동행해 주는 그 마음은 이미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요한 15,13) 고귀한 사랑의 전주곡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마음과 사랑의 실천이 큰 축복의 원천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친구가 예수님을 만나도록 초대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나누려는 진실한 마음을 그 친구가 안다면, 분명 나의 그 진실한 마음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만나는데 따라나설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들, 오늘 벗님의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예수님을 가장 잘 만나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그분을 소개시켜 주세요.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마시고, 그냥 그 친구를 사랑하기만 하십시오. 

오늘 벗님이 필립보가 되고, 벗님의 친구가 나타나엘이 될 것입니다. 그 나타나엘이 바르톨로메오 사도로 변하여,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충실한 하느님의 사도가 될지 누가 압니까? 벗님의 믿지 않는 친구들을 무시하지 말고 축복해 주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벗님을 초대하여 하느님을 알게 해 준 벗님의 필립보를 위해서도 감사 기도 드리십시오. 그 친구 덕분에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제자되는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요한 사도는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자."(1요한 3,18)고 권고합니다. 필립보와 나타나엘처럼 그렇게 사랑하라는 말이겠지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 온 사람이고,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 죽음 안에 머물러 있다네요.(1요한 3,14)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건 내 마음이 잘 알고 있다네요.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찜찜하다면 아직 생명의 문으로 들어서지 못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1요한 3,19-21 참조)

 

여러분은 혹 누구 때문에 마음이 찜찜합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을 위해 행동으로 작은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 앞에 생명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