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르 1,9)
예수님은 정말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의식하였을까요? 의식했다면 언제부터였을까요? 이미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원래부터 하느님이신데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순수하게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그는 우리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살았겠지요.
분명한 것은 그가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때 가장 강력한 하느님 체험을 하였다는 것이죠.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자기에게 내려오고 하느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루카 3,22)이라고 하심을 강력하게 느낀 것 같아요. 이 세례 때의 하느님 체험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을 갖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을까요?
벗님은 언제 "하느님께서 나를 참으로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셨나요? 세례 때, 견진 때, 아니면 결혼 때, 수도자라면 서원 때, 성직자라면 서품 때,
그것도 아니면, 벗님이 사업이나 중요한 일에 성공이나 실패를 했을 때, 또 죽음의 위기를 겪은 큰 병을 앓았을 때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거나 사별했을 때...
여하튼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강력한 체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참 하느님의 아들이요 딸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 세례축일에 내가 세례받았을 때의 그 순간으로 돌아 가 보십시오. 그때 체험했던 하느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난 기쁨과 감동을 되새겨보십시오. 하느님은 사실 벗님이 의식하건 못하건 항상 벗님과 함께 계셔왔으며 앞으로도 그러실 것을 확신하게 될 겁니다. 아멘!
세례는 오늘날 약식으로 진행되지만 사실상 침례였습니다. 온몸이 물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입니다. 이로써 죽음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세례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나의 온갖 죄와 허물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는 가장 겸허한 자세입니다. 이 자발적인 겸손한 죽음맞이는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만듭니다. 이렇게 나를 온전히 내려놓을 때 성령이 임하시게 되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부활합니다. 이제야말로 하느님이 태초에 창조하신 그 모습으로 아름답게 재탄생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하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이사 42,1) 아들 딸입니다. 이 고귀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겸손한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딸로 살고 거룩하고 겸손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중 제 2주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1.15 |
---|---|
~ 연중 제 1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1.13 |
~ 주님 공현 대축일 - 빛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1.08 |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1.05 |
~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