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월요일 ( 다니 13,1-9.15-17.19-30.33-62) (요한 8,1-11)
오늘 미사의 독서들에서
우리는 매우 당혹스런 스캔들을 마주합니다.
독서는 누명을 쓴 무죄한 수산나의 이야기고,
복음은 현장에서 붙잡혔다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여인 이야기지요.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다니 13,45).
수산나가 악하고 음흉한 두 원로의 거짓 고발로 처형장에 끌려가던 중 하느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수산나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다니 13,2-3 참조)임을 하느님께서 누구보다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다니 13,46).
적어도 다니엘은 다른 사람들처럼 원로요 재판관인 고발자들의 신분만 믿고 맹목적으로 동조를 선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그 순수한 마음 안에 있는 통찰과 의견의 영을 "깨우신" 것이지요. 이제는 다니엘에게 선택의 순간입니다. 혹시라도 그가 침묵하면 무죄한 이가 흘린 피의 책임이 그에게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다니 13,62).
사람들은 다니엘에게 귀기울였고, 다른 원로들은 하느님의 개입을 감지하고 다니엘에게 원로의 지위를 주어 신문을 허락합니다. 온 백성이 모두 하느님의 뜻에 합심한 결과로 정결한 수산나는 목숨을 건지게 되지요.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요한 8,4-5)
아주 분위기가 험악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그렇잖아도 곤욕스런 여인을 성전 한복판에 세웁니다.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하라'고 침묵을 택하시면 그 여인이 죽고, '그래도 그러면 되겠냐'고 하시면 예수님이 올가미에 걸릴 겁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요한 8,7.9).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으로 답변하십니다. 율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인간 실존에 대한 자각을 "깨우신" 겁니다. 이에 나이 많은 이들부터 떠나가지요. 아마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기 허물을 기억하고 성찰하는 지혜가 건드려진 듯합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회오리처럼 몰아친 죽음의 기운이 물러가고 여인은 목숨을 구합니다. 예수님도 그녀를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이제부터!"
이것이 주님의 사랑법입니다. 하느님도 우리에게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라 ...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사 43,8-9)고,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이사 43,25)고 하셨지요. 주님의 관심사는 과거의 죄악과 그 상처가 아니라 이제부터 펼쳐질 새 삶입니다.
무죄한 수산나를 위해 손수 나서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세상이 죄인이라고 심판한 여인에게서까지 단죄를 거두십니다. 이제는 "죄가 없으니 살려주겠다"가 아니라 "비록 죄인이어도 살려 주겠다"는 마음이십니다.
청년 다니엘은 하느님의 뜻을 증언하여 수산나를 살렸지요. 예수님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여인을 살리십니다. 그분의 방식은 다름이 아니라, 모든 이의 죄의 책임을 당신이 모조리 다 짊어지고 죽으심으로써 죄인인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우리에게 남기신 당부란 "이제부터"라는 새 생명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회개와 보속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이 사순시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새 희망을 속삭여 주십니다. "죄가 없느냐? 살 것이다. 죄가 있느냐? 그래도 살 것이다. 내가 대신 죗값을 치렀으니 안심하여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러니,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죄인 여러분, 우리 모두 더 겸손하게 감사하며 "이제부터"의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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