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1ㄴ-8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버지의 뜻과 아드님의 행위가 하나임을 드러내십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요한 6,37)
아버지께서는 구원하시기로 마음 정하신 이들을 아드님께 보내시고, 아드님은 그들을 받아들여 구원의 길로 이끄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려고 오셨기에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따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뜻 안에서 움직이시는 이 신비는 맹종이 아니라 사랑에 기인합니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40)
예수님의 미션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와 같이 하느님 나라에서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충만함을 누리며 성삼위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지복직관의 행복을 주시려는 것이지요.
창조와 마찬가지로 구원도 피조물인 우리 모두의 행복을 목적으로 합니다. 성삼위 하느님이 사랑의 유대 안에서 누리시는 행복을 우리도 누리게 하시려는 그분의 확고한 의지시지요. 이 목적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뜻이 하나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그런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이루어지는 놀라운 과정이 엿보입니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4)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아 흩어집니다. 특히 스테파노 죽음의 현장에서 비교적 소극적인 역할을 하였던 사울이 이제는 매우 적극적으로 박해를 주도하지요.
그런데 흩어진 신도들이 도망가서 그저 조용히 숨어 지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퍼져 나간 곳곳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박해가 파견의 역할을 한 것과 진배 없게 된 것이지요. 고통이 징검다리가 되어 구원을 견인합니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사도 8,8)
말씀을 듣고 받아들인 이들에게서 기쁨이 넘칩니다. 기쁨은 말씀의 결과이고 열매입니다. 효과이기도 하고 또 증거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곧 기쁜 소식이기에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삶의 중심으로 삼은 이들은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접한 이들의 특권인 기쁨은 그의 새로운 본성이 됩니다. 구원과 기쁨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상 순례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앞당겨 맛보고 누릴 수 있는 방법이 곧 기쁨입니다. 기쁨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울하고 절망스런 상황 앞에서도 힘 내어 기쁨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금 기쁘십니까? 주님을 믿어서, 형제들과 함께라서, 고통을 견딜 힘이 있어서, 가난해도 나눌 수 있어서, 상처와 실패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주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어서, 자신의 한계 앞에 겸손할 수 있어서, 삶에서는 점점 작아지고 있지만 비움과 가난으로 오히려 점점 더 주님을 닮아가고 있어서... 구원의 기쁨은 삶의 역설 곳곳에 감추어진 보물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드님이 의기투합하시어 우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으니 우리 구원은 따논 당상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오늘은 더더욱 큰 기쁨을 충만히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성령과 함께 힘껏 기뻐하십시오. 우리 기쁨으로 주님도 크게 흡족해 하시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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