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사도2,14ㄱ.36-4)(1베드 2,20ㄴ-25)(요한10,1-10)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14ㄱ.36-41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영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2,20ㄴ-25
사랑하는 여러분, 20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21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22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23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25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양들의 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성소주일인 오늘 미사 말씀들에서는 '부르심과 들음'에 대해 깊이 숙고하라고 하십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3ㄱ).
양들은 기가 막히게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주인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는 단번에 알아차리고 절대로 따라가지 않지요.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요한 10,3ㄴ).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압니다. 이름을 안다는 건 그 존재를 면밀히, 구석구석까지 섬세히 알고 감지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양이라도 목자의 사랑에서 소외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그렇게 잘 알아듣는 이유는 먼저 목자가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애정을 갖고 대하며 불러 주기 때문입니다.
그냥 '뭉뚱그려' 막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귀하게 이름을 불러줍니다. 아무개 엄마아빠가 아니고 아무개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 주시는 주인이시기에 그 각별한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수가 없지요.
한편, 우리를 아무개로 취급하며 애정없이 부르는 다수의 목소리는 금방 알아듣고 주인이 아님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당신 자녀를 부르시는 방법도 이렇게 개별적이고 각별한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확실하기에 그 목소리를 분명히 알아듣고 주인의 뒤를 따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생명의 길, 풍성한 생명의 길(요한 10,10 참조)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는 오순절에 행한 베드로의 설교대목이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2,37)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들은 이들이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묻습니다. 이 질문 안에는, 신앙생활을 하느라고 하면서도 늘 미진하고 부족한 듯한 죄스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사는 우리의 목소리도 들어 있지요.
한편, 베드로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선포하는 것을 본 사람들의 첫반응은 분명히 부정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들은' 사람들은 그 소리가 사람의 소리가 아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들렸을 겁니다.
그래서 마음 아파하며 회개의 길을 찾습니다. 생명의 길을 찾습니다. 세례로 새로 태어나는 길을 걷습니다. 여기서도 부르심(설교)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들음"이 성소의 결실을 맺음을 봅니다.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사도 2,39).
사실 이 부르심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축복입니다. 이 부르심을 알아듣는 이는 누구나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누리게 됩니다. 그 부르심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이 축복을 걷어 차 버리는 것이겠지요.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1베드 2,21).
베드로 사도는 이 은총과 축복이 그저 평안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그런 은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1베드 2,20) 얻게 되는 은총이라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모든 성소의 길은 생명으로 이끄는 축복인 동시에 고난도 겪을 수밖에 없는 십자가의 길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요한 10,4).
"앞장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말씀입니다. 그분은, 자기는 뒤로 빠진 채 양들을 몰아대는 삯꾼이나 양들을 해치고 팔아넘기려는 도둑과 다릅니다. 위험한 광야를 먼저 성큼성큼 헤쳐나가며 길을 만드시고 "발자취"를 남기십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이 "본보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1베드 2,25)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고 보호자이십니다. 대가에 연연함 없이 사랑 때문에 양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목자이십니다. 그분의 목적은 단 하나,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요한 10,10)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이 소명 자체가 대가이고 보상이며 완성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하느님의 각별한 개별적인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 부르심을 단번에 알아듣고 '예' 하고 응답하였기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사제로 부르심을 받든 평신도로 부르심을 받든, 수도 성소로 부르심을 받든 결혼 성소로 부르심을 받든 하느님께서 나를 위한 소명으로 불러 주셨음을 기억합시다.
남들이 가는 길이 때론 부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나에게 주시는 은총과 축복의 선물은 나만의 길입니다. 물론 지금 그 길이 모호해 보일 수도 있고 때론 많은 고난도 섞여 있을 수가 있습니다. 거짓 목자의 목소리에 내가 흔들릴 수도 있고, 그분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귀기울여 들어봅시다. 저 멀리서 그분은 손짓하며 나를 부르십니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들 때문에 잘 안 들리겠지만요.
오늘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내가 주님의 애정어린 목소리를 처음 듣고 설레었던 그때로 돌아가 봅시다. 그 음성을 다시 기억하고 벗님을 애타게 부르며 손짓하고 계시는 그분을 만나 뵙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어기 계시네요. 빨리 쫓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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