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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 양승국 신부님 ~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과분하게도 내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복음서를 읽다 보면 베드로나 안드레아, 야고보나 요한처럼 자주 등장하는 사도들이 있는가 하면, 거의 침묵하고 계셔서 그 존재감이 미미해보이는 사도들도 계십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10번째, 11번째로 소개되고 있는 사도들인데, 시몬과 유다(타대오) 사도입니다.

 

시몬 사도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며 전직 열혈당원이었다는 것뿐입니다. 그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유추할 뿐입니다.

 

‘유다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서 폭력과 살상도 마다하지 않던 독립군 유다가 예수님을 만나 주님의 군사로 변화되었다.’

 

유다 사도의 이름은 신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딱 세 차례에 걸쳐 아주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두 번에 걸쳐 등장하는 사도들의 명단에는 유다라는 이름이 빠져있습니다. 대신 타대오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유다 사도를 예수님의 형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유다 사도는 메소포타미아 지방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수호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백과사전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모호한 인물에 대해서는 신뢰할만한 정보가 없다.”

 

두 사도에 대한 관련 자료나 문헌이 적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베드로 사도나 요한 사도처럼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도단 내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해서 그 영향력이 미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쪽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묵하면서도 충직했습니다. 고민하고 따지기보다는 묵묵히 실천했습니다.

 

‘스승님의 모든 말씀은 내게 있어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목숨 걸고 준수해야 할 명령입니다!’라고 여기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했습니다. 사도로서 자신의 신원에 걸맞게 살려고 애를 쓰다보니 따로 말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시 추수할 일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 앞에서 말하기보다는, 하루 온종일 죽기 살기로 헌신하고 뛰어다닐 일꾼이 필요했었는데, 그들이 바로 시몬과 유다 사도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도 많은 말보다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주님을 증거할 또 다른 시몬과 유다 사도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열두 사도를 부르셨던 것처럼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잘나거나 특출해서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측은해서, 이런 우리와 당신 사명을 공유하기 위해, 결국 우리를 구원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과분하게도 내 이름을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