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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2주간 화요일 / 송영진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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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화요일 강론>(2023. 11. 14. 화)(루카 17,7-10)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겸손하게 섬겨라.』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7-10).”

 

여기서 ‘주인’은 하느님이 아니고, ‘종’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종이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신앙생활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신앙인의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서

세속 상황을 예로 들어서 하신 말씀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고마워할 줄 모르는 주인과 같다는 뜻도 아니고,

신앙생활은 종들의 중노동과 같다는 뜻도 아닙니다.>

루카복음 12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신앙생활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생활입니다.

<내가 살려고, 즉 구원과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생활입니다.>

구원과 생명은 ‘내가 바라는 것’이고,

그것을 얻었을 때 가장 기뻐할 사람도 ‘나 자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뻐하는 나를 보시면서 함께 기뻐하십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더욱 크게 기뻐하게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분이, 또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나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을 보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신앙인이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기뻐하고 고마워하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루카 15,29).”

겉으로만 보면 큰아들은 분명히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라는 말은,

그가 기쁨은 하나도 없이 “내 처지는 중노동을 하는

종과 같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아버지는 큰아들이 빗나가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기뻐하고 고마워하면서도, 그가 기쁨 없이

종처럼 살고 있는 것을 크게 가슴 아파했을 것입니다.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라는 말은,

“왜 저에게 고마워하지 않으십니까? 왜 저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 않으십니까?” 라고 항의하는 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서운하고, 화가 날 뿐입니다.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큰아들 같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쓸모없는 종’이라고 스스로 낮춘다고 해서

정말로 우리가 쓸모없는 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낮추면 오히려

‘더욱 쓸모 있는’(더욱 사랑받는) 자녀가 됩니다.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신앙생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는 말은

특별히 자신을 낮추는 말이 아니라,

실제 사실을 그대로 고백하는 말입니다.

무턱대고 낮추기만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진정한 겸손은 ‘사랑’과 ‘감사’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라는 말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말할 때에만 겸손이 됩니다.

<만일에 ‘사랑’도 ‘감사’도 없이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되기는커녕

하느님께 대드는(반항하는) 말이 되어버립니다.>

 

시편 8편은, ‘사랑, 감사, 기쁨, 겸손’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유명한 찬미가입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시편 8,4-7).”

신약성경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응답과

‘마리아의 노래’가 대표적인 모범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ㄴ-48ㄱ).”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시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향해서 나아갈 기회를 얻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겸손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