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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2주간 화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2,23―3,9
23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24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3,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향이 좋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이 취해 하는 말이야/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님 생각 고향 생각 달래려고 하는 말이야/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고향이 좋아’라는 노래의 가사가 다 맞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4년이 넘게 뉴욕에 살면서 타향도 정이 들면 지낼 만 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욕에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신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추모관에 가서 연도를 하였고, 가족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보고 싶었던 동창 신부님들도 만나고, 함께 했었던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동창 신부님의 배려로 좋은 숙소에서 편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깨끗하고, 편리하고, 모든 것이 익숙했습니다. 그럼에도 왠지 어색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제가 잠시 머물기 위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뉴욕 공항에 내리면서 하늘을 보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 될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민 와서 정을 나누며 사는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한국에 더 많은 정이 갈 것 같습니다.

 

생각하니 사제의 삶은 ‘유목민’의 삶과 비슷합니다.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기 보다는 교구의 인사이동에 따라서 계속 머무는 곳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32년 사제생활을 하면서 6곳의 본당에 있었습니다. 4곳에서는 보좌신부를 하였고, 2곳에서는 본당 신부를 하였습니다. 중견사제 연수와 제주도 엠마오 연수를 하였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용문 수련장에서도 지냈습니다. 지금은 이곳 뉴욕에서 신문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사제로 사목했던 중곡동에서의 생활은 먼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용산에서는 3분의 본당 신부님을 모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검정에서는 2년 동안 성전신축을 하면서 빌라에서 지냈습니다. 제기동에서는 말년 보좌신부로 지냈습니다. 적성에서는 드디어 본당신부가 되어서 지냈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타향이 곧 고향 같습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유목민’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정든 고향을 떠났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어디에 사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낼 수 있다면 바로 그곳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내 욕망과 내 욕심을 먼저 찾으려고 한다면 아무리 편하고, 풍요로운 곳일지라도 결코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은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유목민처럼 먼 타향에서 땀 흘린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있습니다. 광부로 파견되고, 간호사로 파견되어 힘들게 살았던 분들이 있습니다. 열사의 사막에서 땀 흘린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고통 받는 것 같았지만 희망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한다면, 진리를 깨닫는다면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그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