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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2주간 목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강의 중에 ‘가톨릭은 은총의 종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생명의 은총, 도움의 은총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부처님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소승불교는 그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엄격하게 적용하였습니다. 대승불교는 그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넓게 개방하였습니다. 엄격하든, 넓게 개방하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가톨릭은 ‘은총’의 종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믿으면 하느님께서 골고루 비를 내리듯이, 어디에나 햇빛이 비추듯이 그렇게 은총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강의 중에 ‘은총 생활의 장애’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는 모두 은총을 받아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는데 ‘장애물’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장애물은 대부분 밖에서 오는 줄 알았습니다.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대부분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의 강의는 저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장애물이 밖에 있다면 하느님께서 없애 주실 수 있다고 합니다. 장애물이 나의 마음에 있을 때는 하느님께서도 없애 주시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면 그때 비로소 장애물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토마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다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상처를 직접보고 만져 보아야만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니체는 그동안 우리들이 가졌던 신앙과 교리에 대해서 냉철한 비판을 가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신은 죽었다.” 하느님 나라와 진리는 누군가로부터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와 인공지능이 알려 줄 수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들이 진리의 빛을 볼 수 있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지혜’를 이야기 합니다.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지혜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청원해야 하고, 하느님께 다짐을 해야 하고, 하느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과거의 먼 옛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이곳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