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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 1주일 / 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1주일: 나해


복음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15
그때에 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마르 1,12-15: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사순절은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더 깊이 느끼며 파스카의 빛을 향한 광야의 고달픈 길을 가는 여정이다. 이 시기는 참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광야의 시련, 하느님께 대한 체험, 마음의 정화 등이 오늘의 주제이다. 독서에서는 노아의 홍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노아와 그 아들들은 홍수의 물로 씻긴 새로운 인류를 의미하며, 하느님께서는 무지개(창세 9,13)라는 평화의 징표를 통해 이 인류에게 생명과 사랑을 영원히 베풀어주실 것을 약속하신다(창세 9,14-15). 


베드로 사도는 홍수가 많은 사람에게 멸망의 원인이 되었지만, 비록 소수라 해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1베드 3,21). 세례의 물을 통하여 묵은 인간을 벗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파스카이며 우리의 파스카이다. 사순절은 세례를 통해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충실성의 요구에 따라 살아야 함을 재확인하고 노력하는 시기이다.


오늘 복음은 사순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사탄과 격렬한 투쟁을 벌이면서 동시에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따름으로써 내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광야에서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12-13절)와 첫 번째 복음의 선포 이야기(14-15절)이다. 이 둘을 연결하면 사순절의 총체적인 의미가 나올 수 있다. 다른 복음에서와같이 마르코 복음에도 예수님의 유혹이 나오지만, 다른 복음과는 달리 간결하게 표현하면서 풍부하고도 효과적인 면이 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유혹은 예수께서 광야에 있는 사십일 동안 계속된 것같이 보인다. 이것은 그 유혹이 극복하기가 힘들고 피곤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악의 세력과의 격렬한 싸움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예수님의 공생활 전반에 걸쳐 악의 세력과 싸우시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사탄을 거슬러 하는 싸움은 예수께서 광야로 나가는 데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께서 당하신 유혹이 어떤 것인지는 전해주고 있진 않다. 그 유혹은 십자가를 통해야 하는 어렵고도 험난한 메시아사상과는 반대로 쉽고 승리감에 넘치는 메시아 상으로 바꾸려는 술책이다. 이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후에 사탄이라고 크게 꾸짖으시며,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 33) 하신 것과 같다. 


이 유혹은 십자가 위에까지 계속될 것이나,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당신 자신을 맡김으로써 극복하실 것이다. 이러한 유혹은 세상 마지막 날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다가올 유혹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곯아떨어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 사순시기에도 우리에게 하실 것이다.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르 14,38).


오늘 복음에서 광야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광야는 무한한 고독의 상징처럼 다가오지만, 광야는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이루게 하는 곳이며, 동시에 인간적인 모든 자신감을 털어버리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신의 무능력, 나약성, 무력감을 가장 절실히 느끼게 되는 곳이다. 예수께서는 사십일 동안 광야에 머무시는 동안에 하느님과 더욱더 깊은 만남을 체험하신다. 


광야에서 예수께서는 사탄의 정면 공격을 물리칠 힘을 주시는 하느님의 더욱더 강한 현존도 체험하신다. 이 광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보내신 분이 바로 성령이심을 마르코 복음에서도 강조하고 있다(12절). 이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셨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상으로 거룩한 숫자이며 광야의 체험과 연결되어 있다. 이 사십일이라는 기간의 의미는


우리가 하느님 앞에 우리의 존재가 무엇임을 깊이 깨달을 때야 하느님께 대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하느님 앞에 자신들이 가졌던 그 자세로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느꼈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우리 각자에게 있어서 새롭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침묵의 공간을 즉 광야를 만드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삶 속에서 왜곡된 하느님의 얼굴만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을 쳐 이기심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하고 평화를 주시며 인간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준다. 천사들의 시중(13절)은 바로 이 승리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변화도 암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광야 체험을 하신 후에 제일 먼저 선포하시는 내용이 사탄과의 싸움을 통해 당신 안에 실현하신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것이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5절). 


사순절이 요구하는 회개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탄을 몰아내고 하느님을 우리의 삶의 첫 자리에 모시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길고도 험한 광야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욱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