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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사순 제 4주간 목요일 / 기경호 신부님 ~

사순 4주 목요일/ 요한 5,31-47


복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요한 5,40)

 


예수님을 알아보는 믿음과 열린 마음 ♣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행하시는 일, 하느님 아버지, 성경 이 셋이야말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5,36-39). 예수님의 사명은 하느님의 능력을 받지 않고는 이룰 수 없고, 예수님 자신의 증언이나 사람의 증언은 효력이 없으나 아버지의 직접적인 증언이야말로 확실하며,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야말로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무엇보다도 불신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귀가 멀어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눈이 멀어 그분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5,37).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며, 자신이 주인인양 착각하니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선입견과 세속적인 가치관과 잣대를 앞세웠던 그들이 바로 코앞에 계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에 관한 성경의 증언마저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닌 성경책 속의 문자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으려했기에(5,39-40) 말씀 안에 머물 수 없었고, 결국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구원의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지금 한창 첨단 인공지능 딥마인드(deepmind) 알파고와 이세돌 프로바둑 기사와의 세기적 대결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둑은 우주 전체의 원자수보다 많은10의 170제곱이나 되는 경우의 수를 가져 컴퓨터가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역에 인공지능이라는 과학이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대단한 과학의 발전입니다.

우리는 과학의 힘, 정보의 힘, 자본과 물질의 힘, 스마트기기들이 주는 편리함과 힘에 점점 맛을 들이고 빨려 들어가는 듯합니다. 그 맛이 너무 좋고 힘이 있으며 매력적이어서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직, 비인간화라는 참담한 현실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의미, 예수님의 자리, 복음 가치 등 영성생활의 모든 면에서 극한의 도전을 받고 있고 각성을 요구하는 오늘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보다 신앙을 보존하고 실천하며, 삶에서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예수께서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전 생애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에 몰두하셨음을 기억하고, 성경책 속의 문자가 아니라 주님의 영을 지니고 말씀을 실행하도록 힘쓰며 중심을 잡아야겠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 길들여진 무의식적인 습관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 때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조건 없는 사랑과 우주적 포용, 목숨을 바치는 헌신을 통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해야겠지요.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사명이요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확고한 믿음과 겸손한 태도로 세상의 잣대를 버리고 그분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행복한 동행이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