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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27주간 화요일 / 기경호 신부님 ~

연중 27주 화요일/ 루카 10,38-42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




이웃사랑에 우선하는 말씀의 경청

현대인들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일중독, 활동주의 덫에 걸려 쉼 없이 움직입니다. 그러다 일이 없으면 허전해 하고 조급해하며, 하느님 안에서 숨 쉬며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며 산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그것은 명목뿐이고 ‘정신없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일에 몰두하다 하느님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이웃사랑의 본보기로 제시한데(10,30-37) 이어 여기서는 마리아를 하느님 사랑의 모범으로 묘사하면서, 주님 앞에서 더 중요하고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마르타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하던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10,39) 곧 그분의 제자로서 당시 남자들에게만 허용되던 말씀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교 관습과 사회적 차별을 뛰어넘어 여자를 가르치셨습니다.

마르타는 자기 집을 찾으신 예수님을 환대하려고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습니다(10,40). 그러다보니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이와는 달리 그 와중에서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10,39).

예수님께서는 이웃사랑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사랑이 그보다 우선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인간적인 모든 일, 심지어 이웃사랑보다 더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필요한 한 가지가 바로 하느님 사랑을 위한 말씀의 경청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권고합니다. “현세의 모든 것들은 기도와 헌신의 정신에 이바지해야 합니다.”(인준받은 수도규칙 5,2) 그렇습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위 그 어떤 것도 하느님과 무관하게 이루어지거나 주님의 영의 이끄심을 따르지 않는다면 모두가 헛되고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모든 일과 활동은 하느님 사랑으로 하느님을 위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에 젖어들어야 합니다. 심지어 이웃사랑이나 자선행위, 봉사활동이라도 하느님 사랑에 앞설 수는 없습니다. 말씀의 경청을 통한 하느님 사랑이라는 이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영성생활의 방향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쁜 중에도 멈추어 말씀을 듣고 되새기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정신없이 활동하여 대단한 성과를 이루고 엄청난 재산을 얻고 명예와 권력을 얻는다 해도 하느님을 잊어버린 채 자기 목숨도 구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자기 욕구 충족에 몰두하거나 여러 신심단체 활동을 하고 수도생활을 하면서도 일의 덫에 걸려 정작 해야 할 하느님과의 만남을 소홀히 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영혼의 암 선고'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도 필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여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