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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28주간 토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강론>(2024. 10. 19. 토)(루카 12,8-12)


복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박해받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늘 신앙을 증언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루카 12,8-12).”


1)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이라는 말씀에서
‘안다.’ 라는 말은, ‘믿는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알다.’ 라는 말은, ‘믿다, 일치를 이루다.
관계를 맺다. 사랑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공적이고 공개적인 자리’를 뜻합니다.
‘증언’은, 만일에 위증이라면 처벌을 받겠다고 서약하면서
하는 일이고, ‘신앙의 증언’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입니다.
‘누구든지’는 이 말씀에서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말들의 뜻을 모두 합하면,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이라는 말씀은, “누구든지
공적이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를 믿는 신앙을 증언하고
고백하면”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는 ‘하느님 앞에서’입니다.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는 “그가 나의 제자라는 것을
증언할 것이다.”이기도 하고, “그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증할 것이다.”이기도 합니다.
<종말과 재림 때에 예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 상황이라면,
이 말씀은 “나는 그를 구원할 것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2)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 라는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 말씀에서 바로 베드로 사도의 일이 연상됩니다.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루카 22,34).”
베드로 사도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고 장담했지만(루카 22,33),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루카 22,54-60).
<여기서 ‘모른다고 말하다.’ 라는 말에는,
‘관계를 끊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에서 ‘주님과 함께라면’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기 전에 이미
그의 마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겁에 질려서......)
그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 것은,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과 ‘함께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부인한
사람은 심판 때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을 부인하는 사람은 구원받기를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시다가,
또는 내버려두셨다가, 그대로 갚아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니고,
예수님은 신앙인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또 신앙을 증언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
그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1-32).”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부인한 뒤에 그대로 영영 떨어져
나가지 않고, 깊이 통회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를 지켜주셨고,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통회는 바로 그 사랑과 보호에 응답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반자 유다를 위해서도 기도하셨을 텐데,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자살해버렸습니다(마태 27,5).
예수님의 사랑도 거부하고, 자신의 구원도 포기한 것입니다.>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라는 12절의 말씀은, 베드로 사도의 경우에 연결해서,
“어디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너희가 신앙을 증언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 라는 약속으로 해석됩니다.


4) 박해를 받는 상황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의 신앙을
‘말’과 ‘삶’으로 고백하고 증언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도움을(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못 받는 것입니다.
<자기가 신자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감추는 것은
‘큰 죄’를 짓는 일인데, 일부러 감춘 것이 아닌데도
주변에서 신자라는 것을 아무도 모를 정도로
신앙인이라는 표시가 전혀 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도
결코 작은 죄는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