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그 두 예언자는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1,4-12 나 요한에게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여기 나의 두 증인이 있다.” 4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5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 그들의 주검은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9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무덤에 묻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0 땅의 주민들은 죽은 그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 두 예언자가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을 쳐다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같은 도요타의 자동차이지만 렉서스는 미국에서 성능과 품질은 물론 가격에서도 충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름을 바꾸었을 뿐인데 인식이 바뀐 겁니다. 미국에서 현대도 성능과 품질에 비해서 저렴하게 취급받았습니다. 현대는 자동차의 브랜드를 아예 ‘제네시스’로 바꾸었습니다. 같은 현대의 자동차이지만 제네시스는 미국에서 성능과 품질은 물론 가격에서도 충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름을 바꾸었을 뿐인데 인식이 바뀐 겁니다. 본당 설정 50주년을 준비하면서 ‘건축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사제관과 수녀원 건축, 체육관 건축, 교리실 확장, 축구장 설치, 납골당 건축’과 같은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건축위원회는 ‘왜’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50주년을 맞이해서 필요한 시설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시설을 만드느냐였습니다. 건축위원회는 두 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하나는 찾아오고 싶은 성당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은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땅이었습니다. 50주년을 맞이해서 만들어지는 시설은 교우들이 언제나 다시 찾고 싶은 성당이 되게 하자는 의미를 담자고 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성당입니다. 타주로 이사를 갔어도, 한국으로 갔어도 다시 올 수 있는 성당이 되게 하자는 의미를 담자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는 이유는 그곳에 예수님의 발자취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곳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고, 그곳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납골당’에 대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저는 납골당이라는 이름 대신에 ‘추모관’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납골당이라고 하면 뼈를 모아 놓은 곳처럼 느껴집니다. 추모관이라고 하면 기억이 담겨 있는 곳처럼 느껴집니다. 저를 지탱하는 건 61년 동안 살아온 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지탱하는 건 몸이라는 육체와 더불어 61년간의 기억입니다. 기억은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연결해 줍니다. 기억은 절망 중에도 희망을 줍니다. 기억은 두려움 속에서도 담대함을 줍니다. 기억은 슬픔 속에서도 위로를 줍니다. 기억은 어쩌면 존재의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기록과 나의 작업이 삭제된 컴퓨터는 그냥 컴퓨터이지 나의 컴퓨터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서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기억입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독서는 구약의 두 인물을 기억해 냅니다. 율법의 상징인 모세와 예언의 상징인 엘리야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율법과 예언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의 신앙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부활’은 상태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부활의 상태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저는 부활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한다면 바로 지금이 부활의 때입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출처 : 우리들의 묵상/체험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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