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제1독서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18-21 18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마지막 날인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받다"는 말씀이 줄곧 다가오십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지난 한해와 각자의 온 생애를 돌아보는 것도 참 좋을 듯합니다. 먼저 복음사가는 세상의 주인이신 분이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정작 오셨을 때는 과연 자기들이 내세우는 조건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느라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지요. 당신께서 사랑하신 백성에게 거부당하신 하느님의 마음이 아리게 느껴집니다. 이 구절에는 하느님의 상처가, 그 통증이 서려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주님께서 아무리 엄청난 축복을 지니고 오셔서 이를 나눠주려고 하셔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십니다.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이들을 일부러 제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피하기 때문이지요. 그분은 결코 사랑을 억지로 떠안겨서라도 받아들이게 강압을 행사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선물하신, 너무도 고귀하고 아름다운 '자유의지'를 순결히 지켜주고 싶으시니까요. 그러니 주님 편에서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이들"이 얼마나 고맙고 기특하시겠습니까! 마치 타인이 우리의 진심을 제대로 알아들어 줄 때 느끼는 흡족함, 고마움, 대견함, 뿌듯함 등과 감히 비교해 봅니다. 그렇게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받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녀는 없지요. 아버지를 인정하니 자녀로 인정해 주십니다. 작고 보잘것없고 죄인이기까지 한 우리 능력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 우리 존재에 생깁니다. 하느님 자녀라는 어마어마한 자리를 꿰어차기까지 우리가 한 공로라고는 "받아들임과 믿음" 뿐입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16). 하느님 자녀 되는 권한에 더하여 우리는 또 "은총에 은총"을 받았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최상의 은총, 각자에게 꼭 필요한 은총을 뜻합니다. 은총은 우리가 고를 수 없고 하느님에게서 강탈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오로지 그분께서 주시길 기다려야 합니다. 은총 수여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있으니까요. 제1독서인 요한 서간의 저자도 우리가 받은 것을 상기시킵니다.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1요한 2,20). 이 말씀이 얼마나 대담한 선언인지요! 성경에서 보면 임금이나 예언자, 선지자들에게 기름부음이 이루어집니다. "기름부음받은자"는 그대로 메시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이니 이 말씀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위임 받은 대리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분"께 직접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면서 우리의 위상이 얼마나 고귀한지 강조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제도 안에서 직무로서가 아니라, 각자가 받은 소명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제직, 왕직, 예언직에 참여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믿는 이들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거룩한 사제직으로 축성된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1요한 2,20). 서간 저자의 대담성이 한층 더 증폭됩니다. 무지하고 부정하며 우매한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니요! 우리가 감히 주님의 모든 진리를, 진리이신 주님을 어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앎은 사랑입니다. 얕은 지식이나 정보, 꾀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면 깨닫는 바가, 아는 바가 생깁니다. 어떻게 앎이 생기는지 딱히 설명하기 어려워도 앎이 "있게" 됩니다. 그 아는 바가 "모두"에 이르려면 단 한 번의 사랑, 단 한 번의 일치로써가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질 때까지 반복적이며 성실한 과정이 필요하지요. 죽는 날까지 항구하고 지난한 "받아들임과 믿음"의 노력말입니다. 받아들임은 주님 앞에 우리 존재를 입구가 널찍한 그릇처럼 둥그렇게 펼쳐 그분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시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용어가 무슨 전쟁 용어처럼 좀 과격해집니다만, 그분이 우리 존재에 "침투"하시도록, "엄습"하시고 "점령"하시도록 과감하고 담대하게, 자유롭고 관대하게 존재를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그분이 하실 것입니다.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받아들임과 받아들여짐은 합일과 일치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기름부음받아 거룩해진 우리에게 쏟아부어진 은총입니다. 지난 한 해, 아니, 우리가 긴 인생 여정을 거쳐 오늘 여기에 있기까지 그분께서 주시고 우리가 받은 무수한 사랑과 은총을 헤아리며 감사하는 올해의 끝날 되시길 바랍니다. 이 감사의 여정에 동무되어 주신 벗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한해 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화답송). 아멘.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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