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빛의 축제일인 ‘주님 공현 후 월요일’입니다. 오늘도 어제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빛의 공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빛을 받으며, 빛 속에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빛을 증언하러 왔던 요한은 물러가고, 참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요한 1,6-9).
오늘 <복음>은 이사야가 예언한 빛이 이미 도래했음을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그 빛은 “즈불룬 땅과 납달리 땅,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부터 비추어왔습니다. 질곡의 땅 갈릴래아, 이곳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당신 ‘사명’의 내용을 밝혀줍니다. 곧 하늘나라는 먼저 이방인의 압박, 곧 죽음의 그늘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먼저 선포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당신은 어두움 속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으로 오시는 분임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빛 안에서 걸어야 하는 첫걸음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밝혀줍니다. 곧 “회개하여라.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슈브,שב)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돌이키다’, ‘돌아오다’라는 뜻인데, 원래의 그림문자의 뜻은 ‘집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합니다. 곧 자신이 ‘이전에 살던 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집에 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전에 살던 집’이란 우리가 거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더 넓은 의미로 우리가 이전에 행하던 행위나 지식까지도 포함합니다. 곧 우리의 행위와 앎으로부터 벗어나 새집으로 돌아와 하늘의 양식을 먹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옛사람의 행위와 지식(옛집)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새로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콜로 3,9-10)이라고 말합니다. 곧 ‘우상의 집’을 무너뜨리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양식인 말씀을 먹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는 죄악을 버리는 것보다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덴의 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에덴동산’은 하느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만든 하느님의 처소(집)임과 동시에, 마지막 때에 다시 회복될 ‘새 예루살렘’(묵시 21,2)입니다.
‘회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호세 14,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켜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있게 하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요한 14,23 참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거처를 함께 하시면 우리 안에 ‘하느님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 안으로의 전환이 곧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건설되도록 수락하는 일입니다. 곧 우리의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하늘나라를 받아들이는 일, 곧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거처가 되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마태 4,15)
주님!
당신께서는 어둠이 덮인 곳에 큰 빛을 비추셨습니다.
질곡의 땅, 핍박받는 이들에게 의로움의 빛줄기를 뿌리셨습니다.
오늘, 저희의 오류와 완고함을 뚫으소서.
어둠의 갇혀 있는 저희의 속박을 풀고, 묶인 이들을 해방하소서.
무지와 어리석음을 밝혀 주시어, 진리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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