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랑의 약손”
요한 서간 저자는 물과 피와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서 하나가 되었다고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 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1요한 5,6-8)
우리는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자신 보다 뒤에 오시는 분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증언한대로 주님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베풀고
십자가 위해서 희생하시는 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진리의 성령께서 이 모든 것을 밝히시며 이끌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증언’이라는 것은 사실 말로 증명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삶에서는
‘사랑’과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시며 진리가 사실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요한 서간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의 생명을 지니는 것임을
또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면
어머니는 이마에 배에 손을 대십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그 손길은 아픈 데를 낫게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제관에는 이름은 정확게 모르지만 같은 종류의 화초가 있습니다.
하나는 좀 떨어진 창가에 있고 또 하나는 부엌 가까이에 있습니다.
창가에 있는 곳의 화초는 커텐을 열고 닫을 때만 그것도 힐긋 보는 것이 다 인데,
부엌 쪽에 있는 화초는 햇볕이 잘 쬐는 곳으로 옮기거나 때로는 싱싱한 잎이
‘참 이쁘다’라는 말과 하께 만져보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창가의 화초는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엌 쪽의 화초는
두 배 정도의 잎과 싱싱한 것이 한 눈에 봐도 알 듯 합니다. 같은 식물이라도 정성과
사랑을 주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요즈음은 창가의 화초에게 ‘참 이쁘다’라는
말을 일부러라도 더 합니다. 잘 자라겠지요?
사람들은 일그러진 나병 환자를 보고 피해가고 꺼려하는 눈치조차 인색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 환자에게 가셔서 손을 내밀어 고쳐주십니다.
바로 하느님의 손길, 약손이신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미움’보다 더 지독한 것이
‘무관심’이 더 사랑에서 멀다고 합니다. ‘미움’은 그래도 비뚤어진 마음에 관심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사랑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지요.
내 이웃에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요한 서간의 저자의 표현대로 ‘하느님 사랑’에
우리가 젖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일치하며 사랑의 힘을
받고 우리도 내 이웃, 때로는 일그런진 모습, 때로는 얼굴을 돌리고 싶은 이웃,
삿대질하며 대드는 이웃, 나를 향해 입을 비쭉거리는 이웃, 이래도 저래도 무표정,
무관심한 이웃을 지치지 않고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겠지요?
사랑의 약손을 펴서 자신도 이웃을 향해 내놓을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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