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 기경호 신부님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요한 3,27)
 

주고 받음의 영적 원리


‘관계’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로부터 온 인간은 관계 속에 살아간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시어 인간과 ‘사랑의 관계’ 곧 계약을 맺으셨고, 관계 속에 현존하신다. 따라서 관계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실존방식이자 삶의 질을 좌우하는 본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관계 속에 살아가면서 자신이 아닌 존재와 무엇인가를 주고받는다. ‘영’(靈)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온 인간에게 가장 으뜸가는 관계는 ‘영적인 관계’이다. 오늘의 성경 말씀들의 비추임을 받아 영적인 주고받음의 원리에 대해 묵상해보자.

영적인 주고받음의 첫 번째 원리는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말대로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요한 3,27) 영적 관계에서 생명과 선과 사랑을 주시는 분은 일방적으로 하느님이시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철저히 우리 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무상(無償)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1요한 5,14) 우리에게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인간은 그저 받는 처지에 있다. 이렇듯 영적인 주고받음은 재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힘없는 자들을 제멋대로 구는 천박한 ‘갑(甲)질’과는 거리가 멀다.

두 번째 원리는 사랑의 주님께서는 늘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만,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께 청하고 받을 때 요구되는 조건은 ‘그분의 뜻에 따라 야 한다’(5,14)는 것이다. 사랑의 동기에서라면 어떤 형제가 불의를 저질렀다 해도 그것이 죽을 죄 곧 성령을 거스르는 죄가 아니라면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청해야 한다(1요한 5,16). 우리가 주님의 뜻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한없는 사랑과 선과 자유와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청할 때에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기도 안에서 식별하지 않고 ‘주님께서 알아서 주시겠지!’라고 말하는 ‘무분별한 막연함’에 자신을 내맡기는가! 또 우리는 고난을 당하거나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 '사랑으로 겪어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책임지려는 노력 없이, 자신도 모르게 ‘다 주님의 뜻이야!’라고 말하며 ‘무책임한 의존’을 하는가! 주님께 청하기 전에 그분의 뜻을 찾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기도하며 식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영적인 주고받음의 마지막 원리는 인간은 하느님께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되돌려야 할 의무’(reddere)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는 우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며 우리가 감사를 드림도 그분의 은사일 뿐이다(연중평일 감사송 4). 생명과 재능, 시간, 재물, 지위, 가족, 인간관계 등 어느 것 하나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그분께 무엇을 드릴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그렇게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이며 ‘받는 존재’이며 ‘말씀을 듣는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며, 오로지 그분으로부터 받은 선(善)과 사랑, 동료 인간을 통하여 받은 모든 것을 ‘되돌려야 할’뿐이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향하여 흘러 지나가는 통로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않고, ‘주고받음의 영적 원리’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리라!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