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명연신부님의 글

~ 연중 제 1주간 목요일 / 조명연 신부님 ~

2025년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합니다. 남녀 간의 만남을 다루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그 역사는 1990년대부터 있었습니다. 결혼이 목적인 청춘남녀들이 맞선을 하는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사랑의 스튜디오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형태의 프로그램 숫자도 늘어났고, 특히 비연예인 출연진으로 현실감을 높인 연애 프로그램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런 연애 프로그램이 왜 끊임없이 인기를 끌까요? 어차피 여기에 나오는 연애란 결국 나의 연애가 아니라, 남의 연애가 아닙니까? 남의 연애사에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질까요? 하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교생 선생님이 오시면 첫사랑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나네요.

 

이를 심리학자들은 ‘감정전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출연자가 매력적인 상대를 만나 느끼는 설렘이 말과 표정과 몸짓으로 모두 표현되니, 이에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설렘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쩌다 친구 따라 성당에 나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너무 좋다고 해서 왔는데, 너무 엄숙해서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좋게 말해서 엄숙한 것이지, 어쩌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 기쁨도 없고, 그저 마지못해 자리만 지키는 신자들의 모습에 처음 온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감정전이가 되지 않아, 전혀 설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까지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자기 자리에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전교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거리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의 표정 하나도 전교의 큰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표정만으로도 주님의 뜻에 함께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치유된 그를 돌려보내시면서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면서 단단히 이르십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이후 행동에 대해 이렇게 복음은 전합니다.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마르 1,45)

 

나병의 치유를 널리 알려야 주님을 더 믿고 따를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널리 알리고 퍼뜨린 것은 오히려 잘한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알린 것이 아니라, 자기의 건강을 알리는 것이 더 큰 목적이 아니었을까요?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 먼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자체가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나의 표정 하나에서도 주님을 충분히 전할 수 있으며, 주님과 진심으로 함께하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우리 삶에 따스한 것은 없다(이정하).

 

사진설명: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