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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2주간 수요일 / 기경호 신부님 ~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다.”(마르 3,5)

 

1월 22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1-3.15-17
형제 여러분, 1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의 말씀나눔 

 

 영혼의 석화(石化)를 벗어나 


오늘 복음은 악의를 가지고 예수님을 해치고 죽이려는 적대자들의 행동(3,6)에도 불구하고 병으로 위축된 삶을 회복시켜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준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법을 위반하는 자는 추방당하거나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탈출 31,14).

 

에세네파에 속한 다마스커스 학파는 이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했지만, 바리사이들은 인간을 고려한 다소 완화된 해석을 했다. 곧 생명이 위독한 경우에는 안식일일지라도 목숨을 구해줄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치유해준 병자는 손이 오그라든 상태였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았다. 결국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의 치유행위는 율법을 어긴 셈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하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3,4). 여기서 예수님의 의도는 안식일일지라도 죽을 위험에 있는 이들을 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반 병자까지 고쳐주는 선행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셨다.

 

그분은 철저히 인간을 위하시는 분이시다.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는 질문은 너희는 어찌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 가운데 가장 고약한 짓, 곧 사람을 죽이는 일을 꾀하려 하느냐 하는 반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입을 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노기를 띠고 그들을 둘러보시며 그들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다.’(3,5) 예수님께서는 적대자들의 완고함과 불신앙에 대해 분노하시고 슬퍼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시기, 질투, 모함, 험담, 과장, 비난, 헛된 말은 선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목덜미가 뻣뻣한 백성’, ‘마음이 고약한 자들’ 등으로 표현되는 ‘마음의 완고’함은 신명기 계통의 심판 사상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벗어나서 하느님께 불순종을 함으로써 선민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멸망하게 되었다는 사상을 계승한 것이고, 동시에 예언자들의 사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어떤 의미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완고한 백성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서 희생되는 예언자로 나타난다.

 

예수님의 태도는 바리사이들에 대한 일회적 반박이 아니라 안식일 자체를 하느님의 선과 생명이 드러나는 날로 바꾸시고자 하신 것이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손을 뻗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3,5). 예수님께서는 병으로 위축된 그의 삶을 회복시켜주셨다.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 나는 육신의 병(질병)과 영혼의 병(죄)으로 인해 위축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또 진리 앞에 문을 걸어 잠근 바리사이들처럼 오만과 고집, 닫힌 마음을 지니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에 만족하면서 소극적으로 안주하지 말고, 선행을 하지 않음이 곧 남을 해치는 것임을 인식하여 좀 더 관대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인간을 살린다.”(2코린 3,6)는 말을 가슴에 새겨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규범 안에 가두는 완고함에서 벗어나자! 혹시라도 나만이 옳다는 생각, 편협, 편견, 고집, 자아도취, 강한 자기주장, 폐쇄적 사고 등 영혼의 석화(石化) 과정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들여다보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