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마르 2,19)
1월 20일 연중 2주 월요일 다해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1-10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의 말씀나눔
굶주림을 채우는 사랑의 단식 ♣
유다인들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의무적으로 단식했고(레위 16,29), 바리사이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다(디다케 8,1).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고행을 본받아 자주 단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마태 11,19) 통한 스승의 영향으로 예수님 생전에는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 단식하지 않았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19-20절에서 생전의 예수님의 입을 빌어 왜 초대교회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단식을 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1세기 교회에서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마다 단식했을 것이다. 1세기 말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디다케 8,1). 구약에서는 혼인잔치를 종말론적 구원의 상징으로 표현했다(이사 61,10).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시대야말로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어 종말론적 구원이 이룩되어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시기라고 하신다. 따라서 단식을 해야 하는 동기는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써 기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당신의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주셨다. 이렇게 해서 죄와 어둠과 나약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벌이시는 사랑의 축제에 예수님과 함께 하도록 초대받았다. 또한 하느님의 사람 되심은 인간의 한계와 제약 안으로 기꺼이 들어오신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에 우리 또한 그렇게 사랑의 존재가 되어야 할 소명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사랑의 축제에서 기쁨과 평화를 체험하며 신명나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은 까닭은 사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함이 곧 기쁜 축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축제는 어떤 이벤트나 행사가 결코 아니다. 이 축제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매순간의 축제여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선과 사랑의 축제를 거부하는 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랑의 부재’, ‘축제의 장례식장화’를 의미한다. 바로 이때야말로 그 빈자리, 결핍, 부재를 다시 하느님으로 채우기 위해 단식을 해야 할 때이다. 우리네 주변을 둘러보자. 사랑 결핍, 선과 정의의 부재, 굶주림과 소외된 이들의 절규가 메아리치는 현장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 단식은 사순절이나 대림절에 의무적으로 하는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확인하고 공감하고, ‘더불어 행복하기 위한’ 사랑의 축제를 벌이지 못함에 대한 가슴 치는 회개의 몸부림이야말로 참 단식이다. 단식하는 그 빈자리에서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 사랑을 받지 못한 이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들, 억울함에 한숨을 멈추지 못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들에게로 발걸음을 돌리도록 하자. 새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철저하고 새로운 회개의 정신으로 단식하며(2,21-22) 그 빈 골짜기에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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