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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성 토미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 이수철 신부님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누가 '하느님의 한가족', '예수님의 참가족'인가?

“하느님의 뜻을 살행하는 사람들”

 

 

 

오늘 복음은 짧지만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강렬합니다. 우리의 내적시야를 한없이 넓고 깊게 해 줍니다. 복음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용하며 나눕니다. 예수님 둘레에는 군중이 에워싸고 있고 군중들은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를 상징하는 듯, 지금 미사장면과 흡사합니다. 이어 전개되는 대화입니다.

 

 

 

“보십시오.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예수님께서는 즉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반문하신후,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십니다. 흡사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 여기 주님의 제대 주변에 미사전례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내 누이요 어머니다.”

 

 

 

참 충격적인 강렬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참가족인가? 에 대한 답을 줍니다. 바로 장소와 시간, 국적과 인종, 종교와 언어, 문화를 초월하여 그가 언제 어디에 있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는 누구나 예수님의 참가족이자 하느님의 한가족이라는 것입니다. 비단 그리스도교가 아니더라도 비록 무신론자라도 그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면 넓은 의미로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혈연가족을 넘어서 참으로 넓고 깊은 의미로서의 모든 인류를 일치시킬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래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도 나오는 듯 싶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했던 두 예도 생각납니다.

 

 

 

“노년의 품위 유지의 우선적 순서는 하느님 믿음, 건강, 돈이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탐욕의 근원인 돈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혈연가족은 얼마나 많은지요! 너무나 자주 주변에서 목격하는 일들입니다. 하느님 믿음 중심의 연대가, 참으로 견고한 하나의 공동체, 예수님의 참가족 공동체를 형성해 줍니다. 바로 이의 생생한 증거가 당대 예수님 중심의 제자공동체요, 명실공히 평생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여기 요셉 수도형제들 공동체요, 그리고 미사에 참석한 형제자매들 모두가 예수님의 참가족, 하느님의 한가족 공동체에 속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의 참가족, 하느님의 한가족에 속할 수 있는 구원의 기회는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수록 거기 삶의 중심에서 예수님도 만날 수 있고 마리아 성모님은 물론 무수한 성인성녀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예수님의 참가족으로서 형제애도 연대의식도 날로 깊어질 것입니다. 평생 하느님의 뜻을 실행했던 주님의 예스맨이 마리아 성모님이셨고 다음 말씀이 성모님의 순종의 믿음을 요약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부전자전이기보다는 모전자전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이에 해당됩니다. 오늘 시편 화답송 후렴은 그대로 예수님의 평생 삶을 요약합니다. 그대로 마리아 성모님을 닮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에 거푸 2회 나오는 예수님의 고백과 일치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참가족에 속한 우리 모두의 공통적 하나의 고백이 있다면 참삶의 의미가 되는 이 고백하나뿐일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참가족이자 하느님의 한가족에 속하는 교회의 모든 성인성녀들이요 오늘 기념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빛나는 모범입니다. 13세기 이탈리아 귀족 출신의 성인의 생몰연대를 보니 만49세까지 100% 삶을 연소시킨 성인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성인보다 27세를 더 살고 있네요. 가톨릭교회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쌍벽을 이뤘던 대학자였고 당대에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성 보나벤투라와 함께 명성을 날렸던 성 도미니꼬회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였습니다. 성인에 관한 인품과 전설적 일화 넷만 소개합니다.

 

 

 

“그는 천품이 유순하고 더할 나위 없이 순결한 일생을 살았고, 오직 진리만을 사랑하며, 신적학문과 인간의 학문을 두루 관통하여 통달하고 있었으며, 마치 태양처럼 자신의 높은 성덕으로 세상을 뜨겁게 하고 자기 학문의 광채로 세상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성인은 1273년 12월 성 니콜라오 축일 미사후 절필하였는데 조수가 그 이유를 묻자, 성인은 “나는 계속할 수가 없어. 내가 이제껏 쓴 것들을 내가 보았고 나에게 계시된 것이 비하면 한낱 지푸라기에 불과해.” 대답합니다. 성인의 겸손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만 49세 사망시 유언으로 침대에 누운채 하늘을 보며 남긴, “내 벗인 죽음이여, 어서 오게나. 기다리고 있었네.” 임종어도 그가 얼마나 분투의 노력을 다한 고단한 삶이었는지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가 선종전 경당에서 십자가의 예수님과 나눴다는 대화도 감동적입니다. 문틈에서 엿들었던 동료수사가 전하는 전설적 일화입니다.

 

 

 

“토마스야! 넌 참으로 나에 대해 참 잘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니? ”

토마스가 예수님께 드리는 답은 예수님의 친구들이자 제자들인 우리 모두의 언제나 소원과 일치합니다.

“주님! 오직 당신만을 원합니다(Nothing but youself, Lord!).”

더불어 생각나는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임종어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Lord! I love you).”

더불어 생각나는, 늘 나눠도 늘 새롭고 좋은, 마음 설레게 하는 제 자작 애송 고백시도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무려 27년전 고백시이지만 지금도 그 마음, 그 사랑은 그대로입니다. 새삼 한평생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던 예수님의 참가족에 속한 성인들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수행함으로 예수님과 날로 깊어지는 우정과 더불어 예수님의 참가족 공동체가 되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