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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의 매일 체험 묵상

 

달라스 성당은 48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2년 후면 50년이 됩니다. 교우들은 지금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있었던 성당을 기억합니다. 처음 시작은 다운타운에 있는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그성당의 이름을 ‘다운타운 성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주차에 어려움이 있었고, 교우들이 늘어나면서 성당 신축과 이전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교우들은 신축하기 전에 임시 성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 성당의 이름을 ‘창고 성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창고 성당에서 지내는 동안 지금의 본당을 신축하였고, 본당 설립 40주년이 되는 2017년에 지금의 성당이 완공되었습니다. 성당 신축 과정에서 모든 교우가 마음을 모았습니다. 성당의 건물은 다르지만, 성당의 이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같습니다. 우리는 다운타운 성당이나, 창고 성당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새로운 성당이 우리에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율법과 계명으로 이어지는 신앙을 다시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34년 사제 생활하면서 많은 곳에 있었습니다. 성당은 중곡동, 용산, 세검정, 제기동, 적성, 시흥5동에 있었습니다. 많은 추억과 기억이 있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있었고, 고독과 위로도 있었습니다. 교구청에서도 있었습니다. 사목국, 청소년국, 성소국에 있었습니다. 교우들과의 만남보다는 교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제들과의 갈등과 연대가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영신 수련’을 공부했습니다. 어느덧 20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공부했던 영신 수련은 제 사제 생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뉴욕에서는 ‘미주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일했습니다. 뉴욕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겪었습니다. 신문사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5년의 임기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동북부 ME와 꾸르실료를 맡았습니다. 모든 일에 열정적인 봉사자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작년 2월에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왔습니다. 이곳에서 임기를 마치면 더 이상 새로운 사목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이제 제가 사목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사제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겁니다. 사제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참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겁니다.

 

예전에 집안 어르신들이 이렇게 이야길 하셨습니다. ‘사제가 될 사람은 이제 집안의 일에는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은 사제가 되면 말씀도 높여서 해 주셨습니다. 사제가 하는 일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몸을 축성하기 때문입니다. 강론을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독신을 통해서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고 사목에 전념하기 때문입니다. 순명을 통해서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34년간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찾았습니다. 신자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고, 외로운 이웃들의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나에게 줄 것이 있는 사람을 형제처럼 대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형제처럼 대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내가 신세를 진 사람을 형제처럼 대하는 것 또한 사람의 도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가장 굶주리고, 헐벗고, 아픈 사람을 형제처럼 대하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들 또한 형제처럼 대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십니다. 달라스 성당에서는 새 신자 환영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선물도 드리고, 새로 오신 분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식사합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 타 주에서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같은 하느님을 믿고, 같은 신앙을 가졌기에 모두 가족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신앙을 가진 분들의 따뜻한 환대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는 모두 같은 형제’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도움을 주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내 형제요 어머니입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