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수요일, 설.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인의 귀환을 깨어 기다리는 종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루카 12,35-38)과 사람의 아들이 갑자기 오실 것임을 명심하라는 말씀(루카 12,39-40)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루카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남겨주신 최후의 행위는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장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루카 24,50-51)
그렇습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생명과 자비를 입은 존재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입은 존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생명을 주시고, 당신 존재를 건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비록 지금 내가 그 어떤 어려움에 있다하더라도, 그 속에서 축복을 느끼는 자는 진정 복된 자입니다. ‘복’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곧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처럼, ‘축복’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존재 자체’를 깨우쳐줍니다. 따라서 ‘축복받은 사람’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존재’와 ‘자비’에 깨어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에 깨어있는 만큼, 꼭 그만큼 축복받은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서, ‘축복’은 하느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말합니다. 축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바레크)는 ‘어떤 것을 선사함’이요, ‘주어진 선물’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체만이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무생물은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축성’될 뿐입니다.
‘축복’이란 말씀과 그 말씀의 신비를 통해 표현되고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곧 ‘축복’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εύλογία, benedictio), 곧 좋게 되기를 빌어주는 말이요, 좋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요, ‘위하여’ 건네주는 말입니다.
그러니 ‘축복기도’는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축복을 주셔도 그 축복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응답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그를 축복해 주십시오. 당신의 축복이 실현되도록 그가 응답하게 하소서!
저도 그를 축복합니다.
참 묘한 것은, 그렇게 축복기도를 하면, 먼저 자신이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거부하고 미워하던 상대를 축복해주는 그 순간, 변화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이미 자신 안에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서 그에게 ‘위하는 마음’을 북돋으신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변화됩니다.
바로 이 소박한 ‘축복기도’가 우리에게 당신의 권능에 응답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공간을 열어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의 자비가 흘러들게 하고, 그분 존재를 건네받게 합니다.
다시 한 번 ‘축복’을 빕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받아 누리는 축복의 한해 되길 빕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대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이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창세 12,3).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루카 12,37)
주님!
깨어 희망하게 하소서!
희망하여 그리워하게 하소서.
그리움 속, 제가 이미 행복한 것은 이미 임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임이 나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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