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목요일 강론>(2025. 1. 30. 목)(마르 4,21-25)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내가 먼저 잘 살아 있어야 남을 살릴 수 있습니다.』 1)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성직자들이나 선교사들만의 직무가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의무입니다. 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라는 말씀은, “숨기거나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 라는 명령으로 읽을 수도 있고, “너희가 숨기고 감추어도 언젠가는 드러날 때가 온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숨기거나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 라는 말씀은, 등불에 관한 말씀과 ‘같은 명령’입니다. “너희가 숨기고 감추어도 언젠가는 드러날 때가 온다.”로 읽으면,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구원 사업은) 언젠가 때가 되면 완성될 텐데, 동참하지 않은 사람은 그날 받을 몫이 없다.” 라는 경고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그 나라 건설에 동참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무임승차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복음 선포 활동은(선교활동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랑 실천’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는 사랑 없이 믿음만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믿음과 사랑 실천이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즉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 실천으로 믿음을 증언하는 사람만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사람의 구원’과 ‘사랑’입니다. 신앙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랑 실천’은 우리가 실행해야 하는 ‘하느님의 뜻’ 가운데에서 첫 번째입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라는 말씀은, “잘 새겨듣고 실천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3) 복음서에서 말하는 ‘빛’은 ‘생명’을 뜻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력을 받아서,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그 생명력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선교활동입니다. 그런데 우선 먼저 나 자신이 그 생명력으로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남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먼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어야 남에게 신앙생활을 권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루카 6,39)” 그 생명력은 이웃에게 나누어 준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줄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고 커집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력의 신비입니다. 신앙과 복음으로 바꿔서 말해도 마찬가지인데, 이웃에게 나의 신앙을 증언하면 할수록 나의 신앙이 더욱 튼튼해지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주면 줄수록 내 안에서 복음의 힘이 더욱 단단해집니다. 4) 신앙인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인 사람이고, 등불을 들고 앞장서 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마태 5,14.16). 어둠 속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그 등불의 인도를 받아서 ‘죽음의 어둠’에서 벗어나 ‘구원의 빛’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인은 올바른 길을 가리키고 안내하는 표지판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멈추어야 할 때와 걸어가야 할 때를 알려 주는 신호등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만일에 ‘신앙인의 삶’이 잘못되어 있다면, 즉 믿음 없는 사람들의 삶과 다르지 않게 산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에게 아무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되고, 아무 쓸모가 없으면 하느님 나라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버려집니다(마태 5,13).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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