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5주간 목요일 / 반영억 신부님 ~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마르7,24-30)


복음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의 복음 묵상 (다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어떤 생선 장수가 마을에 가게를 내고 간판을 달았습니다. “이곳에서 신선한 생선을 팝니다.” 한 사람이 들어와서 말했습니다. “‘신선한’은 빼시오. 다 신선한 생선 아니오?” “그렇군요.” 그래서 “신선한”을 뺐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더니, “이곳에서”는 빼도 되지 않을까요? 다 알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래서 그 글자도 뺐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더니 말했습니다. “‘팝니다.’라는 말도 빼야지요.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듣고 보니 그래서 그 글자도 뺐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더니 말했습니다. “‘생선’이라는 글자도 필요 없습니다. 근처에 오기만 해도 생선 냄새가 나니까요.” 그래서 간판 없는 생선가게가 되었답니다. 결국 고객들은 그 사람이 생선 장사를 하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것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그 사람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않되 흔들리지 않는 주관과 소신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이교도 부인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르7,2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르7,28).하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아이에게서 마귀는 떠나갔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선적인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은총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헛배가 불러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음식을 권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이교도에게도 구원의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혜택은 유다인 또는 이교도라는 외적인 관계보다 철저한 믿음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이교도 여인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강아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흔들림 없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여인이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청하며 기대하는 자세는 예수님에 관한 그녀의 신뢰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천하고 부정한 사람임을 인정한 여인의 마음을 믿음으로 받아주셨습니다. 당신의 일차적인 사명은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을 다시 불러 모으는 데에 두셨지만, 감동적인 믿음 앞에서는 당신의 원칙을 고집하지 않으십니다(손희송).


그리하여 마침내 딸에게서 더러운 영이 떠나갔습니다. 믿음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외면하고 감추어 계신 분처럼 보일 때 더 큰 신뢰로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주님의 능력은 드러납니다. “그분은 우리 앞에 있는 험한 산을 치워주지는 않으시지만, 그 산을 넘을 힘과 용기를 주는 분”이십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5,6). 바리사이들의 경건과 신앙이 ‘표면적’ 믿음이었다면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 이교도의 믿음은 ‘속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헛배가 부른 신앙인이 아니라 떨어뜨린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으려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 그리고 그 안에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반영억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