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7주간 월요일 / 이영근 신부님 ~

연중 제 7주간 월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벙어리 영이 든 아이를 치유하시는 장면입니다. 사실, 이 장면은 제자들이 망신당하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자들이 스승을 망신시키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벙어리 영을 쫓아내지 못함으로써 스승을 욕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혹시 스승을 망신시키는 일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주어야 한단 말이냐?”(마르 9,19)

 

 

 

이는 우리가 ‘참 믿음’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고 참아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나마 이렇게 하느님의 자녀로 머물 수 있음은 그분께서 참아주고 기다려주시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신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계시고, 우리를 믿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신의 그 믿음과 그 희망에 의탁하여,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간청해야 할 일입니다.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마르 9,22)

 

 

 

여기서, “하실 수 있으면”이라는 표현은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에,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에 의탁해서 도움을 청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믿음을 북돋우십니다. 곧 ‘믿음’을 주십니다. “믿는 이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마르 9,23).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간청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그는 ‘믿음’과 동시에 ‘믿음 없음’을 고백하면서, 겸손으로 도움을 청합니다. 우리가 믿고는 있지만, ‘진정한 믿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믿음을 청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믿지 않는 것을 청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기도할 때 우리는 이미 믿는 것’입니다. 동시에 ‘기도를 통하여 믿음이 옵니다.’ ‘믿음’(응답)은 ‘들음’(계시)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하시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따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십니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마르 9,25)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누구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당신 말씀의 권능으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십니다. ‘말씀의 권능’을 깨우쳐주심과 동시에, 말씀의 권능을 지니신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마르 9,28) 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아이를 고친 것은 믿음에서 나오는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이 없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곧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도 망신당하고 스승이신 예수님을 욕보이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아이의 아버지처럼,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분의 믿음에 의탁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주님!

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보다

당신 뜻에 합당하게 하소서.

제 기도가 제 뜻이 아니라

당신 뜻에 달려 있게 하소서.

당신이 제게 응답하기보다

제가 당신 뜻에 응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당신 안에서 자유로워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