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3주간 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믿음의 여정
“믿음의 힘, 겸손하고 지혜로운 믿음”
역시 믿음의 선택, 믿음의 훈련, 믿음의 습관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정성을 다한 공동전례기도 수행을 통해 믿음을 훈련하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정주와 순명서원 역시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 역시 보고 배웁니다. 주님께서 감동, 감탄하신 것도 믿음이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함께 갑니다. 어제와 그제 양일간 다양한 연령층의 네 부부가 면담성사를 봤고 따로 물었습니다.
“남편의 삶을 100점 만점에 몇점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내의 삶을 100점 만점에 몇점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지하게 그러나 미소지으며, 똑같은 질문을 남편과 아내되는 분에게도 했습니다. 네분의 자매가 남편 점수를 90점을 줬고, 네분 형제중 두분은 아내에게 90점, 95점, 99점, 100점을 줬고, 즉시 함께 불러 점수를 공개하니 얼마나 기뻐하는지 신뢰와 사랑이 가득한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보면서 배우는 믿음과 사랑이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성장 역시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성장임을 깨달으니 서로 감사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는 ‘말씀의 성모영보 수녀회’ 창립자인 선종완 사제의 <선종완, 깊은 숲, 영란처럼 향기롭게>란 평전을 틈틈이 보면서 믿음을 배웠습니다. 제자였던 박찬용 신부의 선종완 스승 사제에 대한 회고담을 인용합니다.
“박학한 지식도 지혜도 모두 성화시키신 은사님, 시험답안지에 쓰라는 답을 못쓰고 엉터리 설교 답안을 써내면, ‘허허, 요즈음 신학생들은 교수한테 정답 대신 설교를 한단 말이야’하시면서도 좋은 점수를 주신 까닭에 사제가 지식으로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살기를 더 원하신 까닭이었으리라 여겨 집니다. 여름에 선풍기 하나 없이 대야에 냉수를 떠놓고 발을 담그고 성서연구를 계속하시던 그분의 모습이, 또 언제나 변함없이 무릎을 꿇고 연구나 강의전 기도를 바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자들 역시 학식과 더불어 보고 배운 스승의 믿음과 사랑이었음을 봅니다. 우리는 공동체 형제들로부터도 믿음과 사랑을 보고 배우지만 오늘 말씀에서도 복음의 예수님, 2열왕기 독서중 엘리사, 나아만으로부터 믿음을 배웁니다. 반면 편견과 질투에 눈이 먼 예수님 고향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믿음의 반면교사가 됩니다.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질투 역시 믿음 부재를 반영합니다. 믿음이 부족할 때 숱한 오해와 착각이 따릅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게 하는 믿음의 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선입견과 편견의 무지에 눈이 먼 고향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좌절감을 엿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어 믿음의 모범으로서 이방인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를, 또 시리아 사람 나아만을 예로 들면서 독자들의 믿음에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화가 잔뜩 난 고향인들은 예수님을 고을밖으로 내몰고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유히 미련없이 홀가분하게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시니 우리는 여기서도 예수님의 믿음을 보고 배웁니다. 두려움을 몰아내어 내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믿음의 힘, 믿음의 빛입니다. 새삼 무지에 대한 답 역시 겸손하고 지혜로운 믿음임을 봅니다. 우리를 참으로 내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두려움을 몰아내는 믿음입니다.
제1독서 열왕기 하권에서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 예언자 역시, 시리아의 장수 나아만의 방문에도 추호도 위축되거나 주눅된 모습없이 참 의연하고 당당하니 이 또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엘리사는 품위를 지킴과 동시에 나아만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심부름꾼을 시켜 처방을 전달합니다.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나아만은 화를 내어 돌아가려 하자 현명한 부하들의 충언에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니 쾌유의 기적입니다. 이에 감격한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 앞에 서서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믿음의 힘은 하느님의 힘입니다. 나아만을 낫게 한 것은 요르단강물이 아니라 나아만의 믿음이었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다면 하느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탓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부족임을 깨닫습니다. 부족한 믿음을 더해 주십사 기도할 것이며 평소 믿음의 훈련에 충실해야 함을 배웁니다.
여기서 생각하는바 나아만의 나병입니다. 천형이라 칭하는 나병이 믿음으로 치유되었으니 천형天刑은 천복天福으로 변했고 그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믿음입니다. 나병이 없었다면 나아만의 믿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시련과 고통을 믿음 성장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면 탄력좋은 믿음에 전화위복이 은혜가 뒤따를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중 디테일에 강해야 함도 배웁니다. 나아만의 치유에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보잘 것 없이 작은 소녀가 제공한 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 이를 받아들인 나아만 아내의 겸손하고 지혜로운 믿음도 보고 배웁니다.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 책임을 충실히 다함도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말씀의 인물들이 다 좋은 본보기입니다. 오늘 옛 현자들의 지혜도 이와 일치합니다.
“높은 지위에 매달리며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말라. 그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일도 빛나고 사람도 빛난다.”<다산>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행했을 뿐, 그밖의 일은 삼가지 않음이 없었다. 이것이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동몽훈>
부지런히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지족知足의 삶을 사는 이들을 통해 빛나는 믿음입니다. 눈만 열리면 우리 가까이에서도 이런 믿음의 모범을 보고 배웁니다. 정말 보고 배워야 할 것은 신망애信望愛, 믿음, 희망, 사랑의 삶이요, 이런 삶의 모범이 될 때, 이보다 이웃에게 더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들의 신망애 삶을 보고 배우라고 공동체 생활임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날마다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 부족한 믿음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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