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참 좋은 선물 인생을 삽시다
“정주, 경청, 순종”
새삼 묻게 되는 질문입니다. “삶은 선물인가? 짐인가?” 선물인생이 되면 참 좋겠는데 본의 아니게 짐이 되는 인생도 얼마나 많은지요? 삶의 현실은 선물인생에서 점차 짐으로 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은 선물인생입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선물인생이 되고자 부단한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선물인생으로 살 수 있을까요?
성모님의 삶이 그 모범입니다. 성모님처럼 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성모님이 얼마나 하느님의 전폭적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참으로 눈밝으시고 겸손하신 하느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마리아 성모님을 방문하십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에 들어서자 마자 한 인사말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요즘 이 말씀은 제가 고백성사 보속으로 말씀처방전에 가장 많이 써드리는 성구입니다. 실제 실명을 넣어 써드리고 꼭 읽어보도록 합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고무적인 말씀인지요! 이 말씀에 몹시 놀란 마리아는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합니다. 마리아 성모님께서 얼마나 깊은 내적 관상의 삶을 살고 있는지 하느님께서도 반하신 마리아입니다. 이어지는 천사의 말씀도 고무적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하느님의 심중을 그대로 반영하는 가브리엘 천사의 격찬입니다. 우리는 정말 고귀한 품위의 참사람 하나 바로 마리아를 만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류에 주신 참 좋은 선물, 참 좋은 분, 마리아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마리아 성모님처럼 살 수 있을지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정주의 삶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늘 거기 그 자리에서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제몫을 다하며 늘 새롭게 시작하는 정주의 삶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의 삶이 늘 새로운 정주의 삶을 살게 합니다. 나자렛 시골 마을에서 마리아 성모님은 분명 이렇게 사셨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정주의 삶에 충실하면 언젠가 그 때가 옵니다. 겸손하시고 눈밝으신 주님은 때가 되자 당신 천사를 통해 마리아를 방문하시어 격찬의 인사말을 쏟아 놓으십니다. 마리아 성모님뿐 아니라 한결같은 정주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둘째, 경청의 삶입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입니다. 침묵의 사랑, 침묵의 지혜입니다. 정주의 삶과 함께 가는 침묵의 삶입니다. 말없는 침묵이 아니라 주위에 활짝 열려 있는 깨어 있는 사랑의 침묵은 관상적 삶의 기초가 됩니다. 베네딕도 규칙에 맨먼저 나오는 말씀도 “들어라, 아들아!”이며 구약의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강조한 것도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귀를 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듣는 경청입니다. 새삼 경청도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천사와의 문답을 통해 마리아가 얼마나 주님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경청의 사람인지 단박 들어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도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중요한 말씀입니다만 마리아의 응답은 참 신중합니다. 얼마나 깊은 경청의 사람인지 잘 드러납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묻자 천사는 거침없이 하느님의 속내를 다 털어놓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마리아를 신뢰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셋째, 순종의 삶입니다.
믿음의 정주, 믿음의 경청, 믿음의 순종입니다. 정주의 훈련, 경청의 훈련, 순종의 훈련 그리고 습관화입니다. 자발적 사랑의 순종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마리아 성모님의 즉각적인 순종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온 인류의 전환점이 된 오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은 일방적으로. 강제적으로 구원역사를 펼치지 못합니다. 인간의 자발적 응답을,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에 하느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고 고마워하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성모님을 한결같이 끝까지 아드님과 함께 하시면서 순종의 여정에, 비움의 여정에 시종여일 충실하셨습니다. 모전자전 마리아 성모님의 순종을 그대로 닮은 제2독서 히브리서에서 아드님 예수님의 거듭된 고백도 감동적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마리아와 예수님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의 공통적 삶의 의미는 나에게 주어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 이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니에서 감동적 기도와 마지막 임종어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요한복음의 십자가상에서 고백의 임종어입니다.
“다 이루었다!”
마리아 성모님의 순종의 응답이 있었기에 비로소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사야서를 통한 주님의 신탁이 마침내 실현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모심으로 주님과 하나되어 또 하나의 임마누엘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총이 우리 모두 정주의 삶, 경청의 삶, 순종의 삶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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