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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3주간 목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사순 제 3주간 목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고요함의 힘!

 

하느님의 숨

2025.03.26. 16:48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호명환 번역) 열세 번째 주간: 향심(centering)과 침묵(silence), 고요(stillness)

 

내면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는 것은 심오한 힘을 지니는데, 이는 일반적인 문화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때때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행위가 됩니다. 고요함은 때때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움직임입니다.

 

- 찰스 래티모어 하워드(Charles Lattimore Howard), Pond River Ocean Rain(연못 강 바다 비)

 

 

하워드 써만(Howard Thurman: 1899-1981)은 고요함과 침묵의 명상 실천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 줍니다:

 

 

소멸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 영혼의 힘과 재생의 원천을 찾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상당히 중요하고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첫 째, 우리는 잠시 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고요해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매일 일정한 때에 모든 것을 멈추고 고요하게 머무는 예술을 수양해야 합니다. 조급한 성향을 지닌 이들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경 조직 전체와 몸이 오랫동안 활동에, 명확하면서도 긴장을 가져다주는 기능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함을 유지하는 예술을 끊임없이 수양하여 그 예술이 '나'의 습관이 될 때까지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의자나 조용한 장소를 찾으십시오. 책이나 신문을 읽지 말고, 다음에 할 행위에 대해 생각하지도 말며, 먼 과거나 가까운 과거의 실수에 대해 부정하지도 말고, 어떤 말도 하지 마십시오. 고요하게 있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관여하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오기까지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른함은 지나가고 마음과 몸에 새로운 힘을 줄 창조적인 편안함을 느끼는 시간이 잠시 올 것입니다. 그런 시간은 끈질기게 요구하는 일의 부담에서 벗어날 때 올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에 머물 때, 즉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때 올 수도 있으며; 하루를 마치는 시간이나 이른 아침의 고요한 시간에만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마련하여 고요하게 머무는 특별한 예술을 나름대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1]

 

 

찰스 래티모어 하워드 목사는 자신의 신앙 여정에서 고요함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고요함 안에 머무는 것은 제 신앙 여정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고요함은 공허함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덧붙여 말해야 하겠네요. 연못의 물이 겉으로는 고요하게 보여도, 그 아래에는 수많은 생명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생명도 내면에 있습니다. 사랑도 내면에 있습니다!

 

 

고요하게 있다고 해서 저를 비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내면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 내면을 사랑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러니까 고요하게 머무는 것은 제 내면을 사랑으로 차게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고요함에 머물 때 우리는 이미 우리 내면에 이미 사랑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지 모릅니다. 사랑은 이미 지금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삶의 거센 파도가 그러한 사랑을 알아차리는 것을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 내면과 우리 주변의 사랑을 알아차리기 위해 멈추어서 고요함에 지긋하게 머무는 것은 심오한 힘을 지니는데, 이는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에는 반하는 행위입니다.... 현대 사회들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고요함 자체는 빨리 위쪽으로 움직이라고 요구하는 사회의 흐름을 거역하는 예언적 행위이기까지 합니다. 고요함은 많은 일로 바쁘고 분주한 것이 더 낫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무의식에 도전을 던져 주기 때문입니다. 고요함에 머무는 것은 계속해서 주위를 여러 곳에 돌리면서 끝없이 뭔가에 관여하라는 무의식적인 요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2]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삶을 제 이름 때문에 고민해 왔습니다: 그레이스(Grace: 은총). 오늘의 묵상, 즉 [은총은 하느님의 이름입니다.]는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 이 묵상 글은 제가 순간적으로 경험하고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들을 상기시켜 주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 다음에 주어지는 은총을 받기 위한 유일한 전제 조건은 이전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특히 이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80세인 저는 선물에 또 선물을 받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 아름다움, 아픔, 경이로움, 기쁨, 그리고 알지 못함 등등.... 저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쁘고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선물이며, 저를 겸허하게 해 주고 놀라움으로 이끌어주는 선물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은총은 (그리고 Grace인 저도!) 참으로 놀라운 선물입니다.

 

—Grace R.

 

[1] Howard Thurman, Deep Is the Hunger: Meditations for Apostles of Sensitiveness (Friends United Press, 1978), 175–176.

 

[2] Charles Lattimore Howard, Pond River Ocean Rain: Find Peace in the Storms of Life (Abingdon Press, 2016), 6–7.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Exisbati, Untitled (detail), 2021, photo, India,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침묵은 풀밭 위에 뻗져진 저 손처럼 지금 여기에서 살갗을 스치는 풀잎 하나하나를 단순하고 깊이 의식하듯이 현재의 순간에 깊이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