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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5주간 수요일 / 이수철 신부님 ~

사순 제 5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자유의 여정-

 

 

 

여러분은 자유롭습니까?

 

자유롭다고 대답할 사람 얼마나 될까요? 자유로워 인격이고 사람이고 존엄한 품위이고 행복입니다. 사람 누구나 갈망하는바 자유입니다. 자유 역시 능력이요 사람마다 누리는 자유의 정도는 다 다를 것입니다. 세계적 작가 그리스인 니코스 카잔스키스 묘비명도 강렬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16년간 독일 총리를 지냈던 앙겔라 메르켈의 회고록 제목이 “자유”입니다. 그녀의 회고록은 자유에 대한 절절한 호소입니다. 그는 회고록 말미에서 다음처럼 말합니다.

 

 

 

“혼자만을 위한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자유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결코 맹목적 자유도 아니고 자유에 절대적 가치도 두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부터’의 자유만 말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도 정의 되어야 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섬김을 위한 자유’가 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참 자유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자유에도 절차가 있습니다. 주님 말씀 안에 항구히 머물러 살 때,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하루 이틀이 아니 평생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아 가면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니 ‘자유의 여정’중인 우리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살아갈수록 자유로워지는 자유의 여정인지 묻게 됩니다. 참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평생 진리를 깨달아가는 수행이 늘 함께 해야 함을 봅니다. 그러고 보니 평생 공동전례기도 수행은 물론 우리의 모든 수행이, 진리를 깨달아 자유롭기 위한 방편이요, 동시에 이 자유는 온통 주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바 자유는 반드시 진리와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의 문장안에는 “진리는 나의 빛veritas mea lux”이란 라틴어가 새겨져있고, 미국의 하버드대 문장안에는 “진리veritas”라는 라틴어만 새계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바 진리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갈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을 “진리의 연인”으로 자칭했고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자신을 “진리의 협력자”로 명명했습니다. 이렇게 진리이신 주님과 일치될수록 점차 자유로워지는 삶이겠습니다.

 

 

 

진정 자유롭고 싶다면 진리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아가면서 날로 일치가 깊어갈 때 참으로 자유로운 삶이요, 자유의 여정은 예닮의 여정과 함께 감을 봅니다. 그러니 진리이신 예수님을 떠나 자유를 찾음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도 자유가 당신과 직결됨을 가르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진리이신 예수님께 순종하여 진리의 종으로 주님의 자녀답게 살 때, 주님께서 주시는 참 좋은 자유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행복기도중 한 대목입니다.

 

 

 

“주님,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물하시나이다.”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는 끝까지 하느님께 충성을 바치며 불가마 속에서 열렬히 주님을 찬미한 이스라엘 세 젊은이들에 놀란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바로 진리가 자유롭게 하는 참 좋은 상징적 모습을 보여준 이스라엘의 세 청년들입니다.

 

 

 

“우리가 묶어서 불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명이 아니더냐?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참으로 진리이신 주님과 함께 할 때 영적승리에 자유로운 삶임을 깨닫게 하는 상징적 일화입니다. 마침내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세 청년들을 구해 내신 하느님께 찬미기도를 바칩니다. 날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전례 은총으로, 당신 진리로 우리 모두 자유롭게 하시며, 자녀답게 살게 하십니다.

 

 

 

“주님, 세세 대대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다니3,52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