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5주간 수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사순 제 5주간 수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오늘날의 사막을 인식하기!

 

하느님의 숨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4월 8일 화요일 (호명환 번역) 열다섯 번째 주간: 사막의 지혜

사막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립된 장소에서 살았지만,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 마르 1,35

바바라 홈스 박사(Rev. Dr. Holmes: 1943-2024)는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사막 체험에 대해 성찰합니다:

예수님의 직무는 예언자로서의 선포와 공공 신학(public theology) 그리고 강렬한 영적 쇄신 사이의 상호 작용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분은 3년간의 공생활을 막막한 광야에서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후에 사막의 교모들과 교부들의 집이 된 곳입니다. 예수님은 단식하시고 시험을 받으시며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이 내맡기시는 시간을 집중적으로 가지신 후 당신의 소명을 성취할 준비가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활동과 관상, 그리고 참여와 물러남의 이러한 리듬은 그분의 삶 전체에 걸쳐 반복되었습니다....

시작 단계의 그리스도교는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기 전까지 작고 강렬했으며 공동체적인 면모가 강했고 세속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4세기에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인정하는 것을 목격한 열심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관상적 측면이 국가의 비호 아래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5세기에 그리스도교로 귀의한 사람들이 바쁜 삶을 떠나 영적인 명료함을 얻기 위해 사막으로 물러감에 따라 수도승적 삶이 꽃피게 되었습니다. 비록 사막의 교모들과 교부들은 거칠고 고립된 장소를 찾았지만, 그들은 곧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러남의 삶을 살겠다는 그들의 결심은 다른 이들을 그들에게로 끌어들였습니다. 도시의 거주자들이 조언과 위로를 얻기 위해 그들에게 오면서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관상의 역사적 모델은 물러남과 일상 삶으로 돌아감의 리듬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관상 수도자들이 독특한 영적 경계를 만들어낸 것도 바로 이 광야에서입니다.

홈스는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이 사막 교부들과 교모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산과 지혜를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해 줍니다:

만일 사막이 쇄신과 변모, 그리고 자유를 위한 장소라면, 그리고 무더위와 고립이 양육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면, ... 우리는 이러한 유산을 되찾기 위해 우리에게도 사막 체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막이 그리 많지 않다면 이런 생각을 오래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광야는 번화한 교외 지역과 도심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이들에게서, 한밤중의 노숙인 쉼터에서, 시한부 생명을 살아가는 호스피스 환자의 눈에서, 아프리카와 전 세계의 에이즈에 걸린 고아들의 절망감 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들이 포스트모던 시대의(탈근대 시대의) 사막의 교모들과 교부들인지 모릅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포용의 한계를 넘나드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관상을 위한 공간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시 우리가 가장 비천한 이들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을 가장 많이 갖고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에게는 아프리카의 [사막] 수도승적 삶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환대에 중심이 되었던 가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런 가치들에는 공동체적 관계성과 겸손 그리고 동정(compassion)이 포함됩니다. 로라 스완(Laura Swan)은 apatheia(어떤 욕망이나 정념도 없는 상태)라는 단어 안에 이러한 덕들이 다 집약된다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 "성숙하게 온마음과 정성을 기울임(a mature mindfulness), 현실에 기반을 둔 민감성, 자신의 내적인 세상뿐 아니라 자기가 지금까지 여정을 해온 세상에 대해 집중적으로 주의를 기울임" 등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1] 불가피하게도 우리 각자는 이 여정의 방향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나 우리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 각자는 우리 삶의 어느 시점에 와서 사회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 시기 동안, 우리는 관상이 수양일 뿐 아니라 우리의 목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수도승들은 이 사실을 알았고, 이 두 가지를 다 가치 있게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지난 3년간 우리 가정에는 엄청난 아픔과 고통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첫째 딸이 극도로 희귀한 암 진단을 받고 괴로워하다 지난 8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도움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는 외딴곳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매일 묵상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지혜와 희망과 위로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지혜와 희망과 위로가 우리에게는 쉬운 답보다 더 현실적이고 너그러운 힘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의 한 부분인 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는 동안 쉴 방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고 치유의 연고가 되어 주신 데 대해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Curt F.

References

[1] Laura Swan, The Forgotten Desert Mothers: Sayings, Lives, and Stories of Early Christian Women (Paulist Press, 2001), 25.

Barbara A. Holmes, Joy Unspeakable: Contemplative Practices of the Black Church, 2nd ed. (Fortress Press, 2017), 9, 10–12.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Krn Kwatra, Untitled (detail), 2022, photo, Oman,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위 사진은 사막의 교모들과 교부들처럼 어떤 사람이 독거(solitude)와 영감(inspiration)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