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주님 성지 주일입니다. 동시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주님 수난 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임금으로 환영하는 상징적 행위로 성지가지를 축성하여 성당에 들고 들어왔으며,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수난사를 들었습니다.
오늘 <전례> 역시,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임금으로 환호하고 환영하던 행렬은 배척과 조롱의 십자가 행렬로 바뀌고, 하늘높이 흔들던 영광과 축복의 성지가지는 저주와 모욕의 채찍으로 바뀝니다.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던 바로 그들이, 이제 예수님의 속옷마저 벗겨가고, 나귀위에 오르셨던 바로 그분은 이제 십자가 위에 매달리십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왕으로 성 안으로 모셔진 바로 그분이, 죄인으로 강도와 함께 성 밖에서 처형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일을 <제1독서>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미리 예언하고 있고,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찬미노래로 부릅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는 부활성야 때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은 우선 사랑을 거절한 까닭이 아닐 까요!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한 까닭 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이 세상에 아드님이 왔건만, 그 사랑도, 그분도 거절된 까닭이 아닐 까요! 결국,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고통 받으신 것이 아닐 까요! 그리고 오늘도 어쩌면, 당신 사랑이 나의 거절 때문에 고통 받고 있지는 않을 까요!
그렇지만, 당신의 사랑은 너무도 커서, 거절당해도 멈출 수가 없는 사랑인가 봅니다. 하도 커서, 배신을 당해도 그칠 수가 없는, ‘죽기까지’ 해도 다하지 못할 사랑인가 봅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자신을 죽이는 아픔이 따르기 마련인가 봅니다.
이처럼, 고통 속에서도 당신의 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고, 십자가에 매달려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루카 23,34)하고 간청하십니다. 사랑 때문에, 고통을 감수하시면서 끝까지 용서하시는 충실하시고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이렇게, 그분의 수난과 죽음이 빚어진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거절 때문이지만, 실상 드러난 것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 ‘신실하시고 충실하신 사랑’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고통 받으셨고, 고통 받으면서도 사랑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으셨고, 상처 받으면서도 사랑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셨으니, 그런 사랑을 먹은 우리 또한 이미 받은 그 사랑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한 걸까요? 왜 예수님을 거절한 것일까요? 종교지도자들과 원로들은 왜 예수님을 반대한 걸까요? 왜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걸까요? 또 유다스와 베드로, 그분의 제자들은 왜 걸려 넘어진 걸까요?
그것은 그들이 작아져서 못해 섬기려 하지 않은 까닭이 아닐 까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지배와 권세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누가 제일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옥신각신 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감으로 자신을 내세우다 꾸중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옆자리를 요구하다가,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화를 내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작아져서 섬기려 하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의 왕들과 기득권자들은 가진 자로서 권세와 횡포를 부리고, 지배하고 군림하고자 합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작은 자들에게서 빼앗고, 힘없는 이들을 때리고 억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것을 다스림의 기준으로 제시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섬기는 사람으로 처신하십니다. 아버지를 섬기고, 제자들을 섬기고, 자신을 배신할 제자들마저도 섬기십니다. 참으로, 작아지고 낮아져서 남을 섬기며,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종으로 자처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뒤따르는 우리의 삶도 또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호사스런 영광을 취하기보다, 작아져서 섬기는 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오늘, 혹 우리 역시 당시의 제자들처럼, 작아져서 섬기려하지 않으려다 자칫 예수님을 거절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사랑으로, 거부와 배척을 용서로 응답해 가며, 우리에 대한 충실하심과 신심하심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는 우리 주님께 대한 의탁과 희망을 결코 저버리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참으로 그분의 충실과 신실하심이 그침이 없으시니, 우리는 그분 안에서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언제나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사랑를 찬미하며 경배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주님!
그 어떤 모든 일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것은
당신의 사랑이게 하소서.
그 어떤 저의 거절 때문이라도 드러난 것은
당신의 크신 사랑이게 하소서
먼저 사랑하시고 결코 멈출 줄 모르는 그 사랑을
결코 잊지 말게 하소서.
상처 받더라도 사랑하기를 결코 멈추지 말게 하소서.
죽기까지 그침이 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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